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 Kim Nov 04. 2021

Atlanta Braves 홈구장 방문기

26년 만의 World Series 우승을 축하하며

어제, 그러니까 2021년 11월 2일은 World Series 6차전이 열린 날이자 Atlanta Braves가 26년 만의 우승을 확정 지은 날이다. 이전 경기인 5차전에서 4:0으로 앞서 나가다가 결국 역전패한 경험 탓일까? 3개의 홈런을 폭발시키며 7점 차로 앞서고 있던 9회 말 2아웃까지도 Braves의 선수들과 코치들은 굳은 표정으로 긴장을 풀지 않았다. 마지막 타구는 유격수를 향했고, 송구를 잡아 27번째 아웃카운트를 만들어내는 순간 Braves의 프랜차이즈 1루수 Freddie Freeman은 양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다 같이 얼싸안으며 펄쩍펄쩍 뛰던 더그아웃 내의 코치 및 스태프들의 모습은 수백 마일 떨어져 있는 내 가슴도 찡하게 만들었다.   


Braves의 우승이 대단한 것은 플레이오프 시작 직전만 해도 그들은 철저한 언더독 (Underdog, 질 확률이 높다고 평가받는 팀 혹은 선수)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플레이오프 진출 8개 팀 중 가장 승률이 좋지 않았고 (162경기 중 고작 88승) 주요 전력인 Ronald Acuna가 7월 경 큰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기까지 했다. 이때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Braves가 올 시즌을 이대로 포기할 것이라 전망했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대규모 트레이드를 통해 즉시 전력감 선수들을 모아들이며 승부를 걸었다. 그리고 이적생 대부분이 플레이오프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어 팀이 2021년의 대권을 차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팀의 정신적 지주인 선발 투수 Charlie Morton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는 월드 시리즈 1차전에서 투구하던 도중 타구에 맞아 다리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지만 다음 이닝에도 마운드에 올라 끝끝내 한 타자를 더 잡고 난 뒤에야 병원으로 향하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베테랑의 이런 투혼과 헌신이 Braves 팀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객관적인 전력이 분명히 뒤처짐에도 정신력과 순간의 집중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야구가 주는 묘미가 아닐까? 


World Series 6경기에서 3홈런을 몰아치며 시리즈 MVP를 차지한 이적생 Jorge Soler






'언젠간 올려야지'하던 애틀랜타 여행기, 그중에서도 Atlanta Braves의 홈구장인 Truist Park 방문기를 지금까지 미루고 미룬 건 아마도 오늘을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정규 시즌도 끝나기 전, 올해 9월 초 주말에 우리 가족은 뜬금없이 애틀랜타를 방문했다. 애틀랜타에 유명한 한식당이 많긴 하지만 내가 사는 북버지니아도 그 못지않기에 딱히 한식을 먹으러 갈 이유도 없고, 이곳이 볼거리가 가득한 관광지도 아니다. Braves의 홈경기가 잡혀있지 않았다면 '언젠간 갈 날이 있겠지' 하며 미루었을 터이다.   


9월 9일 목요일 오후, 반차를 내고 오후에 공항으로 향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애틀랜타는 차로 약 8시간 거리로 시간만 충분하면 로드트립으로 갈 수도 있었겠지만, 주말을 이용해서 왕복해야 하는 일정 상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다. 약 2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렌터카를 찾고, 야구장 근처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나니 어느새 저녁 8시 반. 세 가족 모두 녹초가 되었고 그냥 침대에 드러누워 자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다.


하지만 여행의 목적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다행히 더운 기운이 가시며 저녁의 거리는 선선했기에 복작복작한 인파를 뚫고 야구장까지 걷는 5분은 생각보다 금세 지나갔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야구장이라 그런지 내부와 외부 모두 굉장히 깔끔했고, 비싼 앞자리 좌석이 아닌 20불대의 중간부 좌석에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움직임이 굉장히 잘 보이기까지 했다. 전통 있는 (혹은 오래된) 야구장의 불편한 의자와 좁은 앞뒤 간격, 기나긴 줄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이는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좌: 구장 앞 대형 로고 // 우: 깔끔한 야구장 내부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경기 중 계속 이어지던 Braves 특유의 '토마호크 찹' 응원이었다. 애초에 Braves라는 팀명부터가 용감한 인디언 전사를 의미하는 것 아니던가? 관객들이 다 같이 도끼 모양의 스펀지, 핸드폰 플래시, 아니면 본인의 오른팔을 아래로 찍어내리며 단조롭지만 호전적인 멜로디의 노래를 끝 없이 불러댄다 (아마도 인디언의 전투 함성을 오마쥬 한 것 아닐까?). 온몸을 울리는 노래가 사방에서 들리다 보면 팬이 아닌 나조차 뭔가가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으니, 이런 환경에서 야구를 해야 하는 상대 팀 선수들이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리가 없다.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영상에서 확인해보시라)




또한 Braves 하면 강타자 Hank Aaron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여 년의 커리어의 대부분을 이 팀에서 보내면서 통산 755개의 홈런을 친 MLB를 대표하는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이다. 매년 MLB 양대 리그 (내셔널 리그, 아메리칸 리그)의 최고 타자를 가리는 상의 이름이 'Hank Aaron Award'이니 그가 얼마나 대단한 타자였는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Truist Park 야구장 내부에 마련된 기념관에는 그의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 필름과 동상, 그의 일생과 야구 커리어를 요약한 동판이 배치되어 있었다. 


Hank Aaron 기념 공간

 

         

야구는 밤늦게 끝이 났다. 숨 막히는 연장전 끝에 Braves의 Joc Pederson이 승부를 마무리 짓는 끝내기 안타를 때려 낸 것이다. 경기장은 흥분과 환호로 가득했고 우리 가족도 즐거운 기억을 간직한 채 숙소로 향할 수 있었다. 첫날부터 무리한 탓에 여행 마지막 날까지 체력 고갈로 고생해야 했지만, 여행의 시작이 워낙 좋아서인지 아직도 애틀랜타 여행을 생각하면 입가에는 미소가 감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번 Truist Park에 들러서 이 날의 분위기를 다시 느껴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달에 두 번 고의사구를 당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