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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Dec 01. 2021

우연히 들른 게티즈버그

Thanksgiving 연휴를 무료하게 보내던 우리 가족은 집에서 두어 시간 떨어진 Hersheypark (허쉬 초콜릿을 테마로 한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다. 연휴라 당연히 사람이 많을 테니 빨리 갔다가 빨리 오자는 생각에 아침 일찍부터 길을 서둘렀지만, 고속도로에서 들려온 와이프의 외마디 비명.


"여보, 여기 오늘 오후 2시부터 연다는데?" 


아, 맞다... 여기 한국 아니라 미국이지. 5년째 살고 있으면서도 아직 버리지 못한 몇 가지 고정관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놀이공원 등의 위락시설은 사시사철 풀타임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짐작이다. 물론 미국에도 365일 내내 운영되는 놀이 공원이 있긴 하지만 (i.e. 디즈니랜드), 지역에 있는 소규모 놀이공원들은 주중에는 아예 문을 닫기도 하고 설령 개장한다 하더라도 하루 몇 시간 수준인 경우가 많다.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닌데 왜 우리 둘 다 이걸 새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하지만 이미 집을 나서기도 했고, 놀러 간다고 잔뜩 들떠 있는 아들에게 집에 가자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래, 어디든 가 보자. 간식도 사 먹고 아웃렛도 들르고 어떻게든 해 봐야지 뭐...






그건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급작스런 자연의 부름(?)도 해결할 겸 출출한 속도 달랠 겸 근처의 맥도널드를 찾아가던 우리의 눈에 커다란 공원이 눈에 띄었다. "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 그렇잖아도 고속도로를 벗어나자마자 곳곳에서 눈에 띄던 대포 모양의 간판과 광고 문구를 보며 '남북전쟁 격전지였나 보다' 싶긴 했는데, Gettysburg? 남북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자 링컨 대통령을 유명하게 한 연설을 한 그곳이라고? 시간도 비는데 잘 되었구나 싶어 식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공원 기념관으로 향했다.


인당 13불에 가까운 입장료를 낼 때는 살짝 고민했지만, 그곳에 전시된 영상, 설명, 각종 물품 등이 워낙 자세하고 정성스러웠기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전쟁 이전의 미국 정세와 갈등의 시작, 전쟁 선포와 진행 상황, 그리고 3일 밤낮으로 벌어졌던 처절한 게티즈버그 전투의 상세한 전개까지. 전시를 천천히 보면서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짧게 훑고 지나갔던 남북전쟁에 대해 다시 공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한 긴 시간 집중을 어려워하는 아들 태민이가 가만히 앉아 소개 영상을 끝까지 시청하는 모습을 보며 신기함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고. 몇 년 지나 국가가 뭔지 전쟁이 뭔지 이해할 나이가 되었을 때 한 번 더 데리고 와야지.




전쟁을 (혹은 일개 전투를) 뭘 이렇게까지 기념하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남북전쟁은 한국의 6.25 전쟁과 매우 유사하다. 한 국가 내부에서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갈등을 빚게 되고 결국 두 개의 국가로 갈라져 수년간 전쟁을 벌였으니 말이다. 수십만의 군인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더 많은 민간인들이 죽거나 삶의 터전을 빼앗겨야 했기에 남북 전쟁은 미국인들에게 매우 아픈 역사다. 그랬기에 승자의 대표인 링컨 대통령도 게티즈버그에서 한 연설에서 승리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유의 탄생과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를 위해 이 모든 희생이 일어난 것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날이 추운 데다 바람도 많이 불어서 긴 시간을 돌아다니진 못했지만, 기념관 건너편에 있는 공원에도 볼거리가 꽤나 많다. 남군과 북군의 주요 장군들 동상들도 곳곳에 세워져 있고, 전투에 참가한 부대를 소개하는 특색있는 기념탑들에는 부대의 인원과 구성, 그리고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가 표기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커다란 석조 건물과 위령비, 그당시 전쟁에서 사용된 각종 대포 및 마차 모형까지 있어 날씨가 좋은 날에 천천히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미국의 역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 필라델피아나 뉴욕을 들르시게 된다면 잠깐 방향을 틀어 이곳에서 반나절을 보내시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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