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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Jan 21. 2021

야구하다 부러진 이야기 (2)

응급실, 수술실, 클리닉, 그리고 재활치료

지난 글에서 자세히 이야기했지만, 도루 중 2루수를 피하려다 엉겁결에 시도한 슬라이딩은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팀원의 말에 따르면, 나는 뛰던 중 엉거주춤하게 슬라이딩을 하다가 갑자기 다리를 붙잡고 쓰려졌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몸을 낮출 타이밍을 놓치면서 왼쪽 스파이크의 날이 땅에 파고들어버렸고, 전력질주로 인해 발생한 모든 에너지와 내 몸무게가 그 발목에 집중되면서 뼈들이 그 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나간 것이 아닌가 싶다.  


감사하게도 팀원 중 소방대원이 있어 급한 대로 부러진 다리에 임시 부목을 해주었고, 누군가의 신고로 앰뷸런스까지 왔지만 다행히 부러진 뼈가 피부를 뚫고 나오지 않았기에 앰뷸런스를 타지 않을 수 있었다 (최소 수백 불을 아꼈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은 앰뷸런스도 굉장히 비싸다). 



1. 응급실


응급실 (Emergency Room, ER)이 가장 비싸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하필 사고 발생일이 일요일이라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행히 신속하게 응급실로 옮겨진 데다 사고 발생 이후 바로 깁스를 해준 덕분에 붓기가 심하진 않았다. 제대로 된 깁스를 하기 전에 X-ray를 찍었는데, 간호사가 사진을 보자마자 ‘으!’하면서 지은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혹시나 그냥 단순히 심한 타박이나 염좌 아닐까' 하던 작은 희망을 깔끔히 분쇄하던 그 표정이라니.


그리고 고작 깁스와 x-ray 몇 장에 850불이 적힌 청구서를 받았을 때 나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2. 수술실


미국 의료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비용 부담도 높기에 가급적이면 수술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부상이 상당했던 지라 - 뼈 하나는 다행히 깔끔하게 부러진 반면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반대쪽 복숭아뼈는 아예 3~4 조각이 났다 – 나에겐 사실상 선택지가 없었고 큰 나사를 여러 군데 박는 5시간에 걸친 수술을 겪어야 했다. 부기가 빠지지 않으면 빠질 때까지 며칠이건 기다려야 한다고 하는데 감사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요일에 다쳤는데 수요일까지 수술을 기다려야 하는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아직도 이해하기 힘들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수술은 잘 끝났고, 수술 중간에 마취가 풀린다던가 수술 이후 못 참을 정도의 고통이 온 것도 아니었다. 한 발로 뛰거나 기면서 밥을 챙겨 먹고, 화장실에 드나들고, 몸을 씻는 게 좀 힘들었지만 익숙해지니 그럭저럭 할만했고, 혈전 (blood clot) 생성을 막기 위해 매일 배꼽 근처에 꽂아야 했던 주사도 아프긴 했지만 이 악물면서 매일 했으며, 수술 자리가 아플 때도 진통제를 먹으면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미국에 온 지 한 달도 안되어서 가족이 아무도 없는 가운데 혼자 수술실에 들어가야 했던 외로움, 참석하고 있던 ESL이나 향후 이어질 MBA 프로그램을 목발을 짚으면서 참석해야 한다는 압박감, 이런 어려움을 초래한 나 자신에 대한 자책과 같은 내적 고통이 훨씬 더 컸었기에 몸의 불편함은 오히려 넘어갈만했었던 것 같다.


물론 도합 세 군데 (수술 병원, 마취과 의사, 외과 의사)에서 날아온 수천 불의 청구서를 받았을 때의 막막함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말이다. 




3. 이비인후과 클리닉


수술 후 너무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서였을까? 아니면 마취제 성분으로 인한 부작용이었을까? 수술 후 한두 달쯤 지난 어느 날, 자던 중 머리가 아파서 일어났는데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어지러움과 두통이 엄습해 왔다. 게다가 눈이 내 컨트롤을 벗어나서 빙글빙글 도는 듯한 느낌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알고 보니 이 증상은 ‘이석증’이었는데, 귀 안의 평형감각을 주관하는 부분 (구불거리는 파이프처럼 생겼다)에서 조그만 돌 (이석)들이 떨어져 돌아다니면서 우리의 뇌에 잘못된 신호를 주고, 이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눈이 멋대로 움직이면서 어지럼증과 두통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겪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석증은 환자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데, 증상이 심한 경우 서거나 걷기도 힘든 경우도 있으며 이석의 안정을 위해 잘 때도 앉거나 상체를 살짝만 젖히고 자야 하기 때문에 숙면을 취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약물이나 수술을 통한 치료도 가능하지만 큰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으며, 필자도 어쩔 수 없이 두 군데의 지역 이비인후과를 찾아가서 진단을 받고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5분 단위로 환자를 회전시키던 한국 이비인후과와 달리, 두 군데 모두 증상을 자세히 묻고 나서 진단을 내리고 필요한 물리치료를 해주는 등 환자 개인에 맞춘 대응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행히 응급실이나 수술실에 비해 비용 부담은 크지 않았지만, 다리도 다 낫지 않는 상황에서 생전 겪지 못했던 이석증까지 얻고 나니 ‘무슨 액땜을 이렇게 거하게 하나’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치료 후 회복되었나 싶었던 이석증은 발목에서 나사를 제거하는 수술을 한 이후 재발하였으며, 사고 후 1년이 지나서야 후유증 없이 다 회복되었다는 느낌을 겨우 가질 수 있었다.   


4. 재활치료


수술과 나사 제거를 마친 후 지루한 재활치료가 세 달간 이어졌다. 다행히 필자가 다니던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는 저렴한 비용으로 간단한 치료를 제공하는 의료 센터가 있었으며, 그곳에서 실력 있는 물리치료사들의 세심한 관리를 받은 덕에 큰 사고를 당했음에도 후유증 없이 회복될 수 있었다. 물론 부러졌던 왼쪽 발목의 가동 범위가 아주 약간 줄어들긴 했지만 이 정도로 불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초반에는 일주일에 2번씩 센터를 방문하여 고무밴드와 손을 이용한 스트레칭과 마사지 중심의 치료를 진행하였으며, 중반부터는 다양한 장비와 도구를 이용한 가동범위 증가와 유연성 회복을 위한 훈련 및 밸런스 훈련을 병행하였다. 그때 한창 Game of Throne이 화제였는데, 자칫 지루하거나 어색할 수도 있는 순간에 - 젊은 여성 치료사가 내 발목을 20분 내내 주무르고 스트레칭하는 상황 같은 - 치료사와 GOT를 주제로 이야기하다 보면 힘들지도 않고 시간도 금방 지나갔던 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 받는 큰 수술이었고, 의지할 가족이나 친척도 근처에 없었던 데다 새로운 땅과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기도 전에 겪게 되었던 일이라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을 어떻게 견뎠나 싶다. 감사한 것은 내 주변엔 친절의 화신이었던 AirBnB 숙소의 주인 Nader와 Jila 부부가 있었고, 학교 riding부터 간단한 부탁까지 자기 일처럼 도와준 MBA 동기 윤성이가 있었으며 (응원한답시고 ESL class 전체가 아래와 같은 사진을 찍어 보내준 건 덤이다), 사고가 났을 때 응급실을 함께 방문해주고 매일같이 안부를 묻던 팀원 Andrew가 있었다. 또한 장인어른께서도 예정에 없이 와이프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오셔서 여러 일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너무나 감사했지만 동시에 지독하게 면이 안 서는 일이기에 부디 다시는 주변에 이런 폐를 끼치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평생 이럴 일이 없으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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