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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Aug 07. 2022

미국에 살아서 행복하세요?

미국에서 자폐아동의 부모로 살다 보면 종종 비슷한 처지의 부모들로부터 연락이 온다. 사연도 다양하다. 한국 학교에서 아이가 적응을 못해 이민을 고민하는 분, 직장 파견으로 미국에 왔는데 미국에서 아이의 자폐 진단을 받은 분,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를 하다 이제 보니 아무래도 아이가 일반적이지 않다던 분 등등. 우리 부부가 아이의 자폐 때문에 미국에 정착한 케이스다 보니 한국과 미국의 상황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그 덕분에 적지 않은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만할 정보를 드릴 수 있었다.


최근 와이프는 친구 A와 전화 통화가 잦다. A의 아이는 경미한 자폐 증상을 보이지만 공부를 잘해서 상도 자주 받고 말도 굉장히 잘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말썽을 꽤나 부리면서 학교 적응을 어려워하고 선생님과의 관계도 좋지 않다고 했다. 원래 남편의 학위 이후 한국에 돌아가려고 했던 A는 한국에 돌아갈 날짜가 다가올수록 심각하게 고민했고, 결국 미국에 남는 길을 생각하면서 와이프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의 지난 3년이 워낙 치열하고 처절했기에 솔직히 권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민이란 건 제삼자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우리는 그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할 뿐이다.






"넌 어때? 미국에 사는 게 행복해?"


와이프가 A로부터 들은 질문인데. 선뜻 "네"라고 답한 와이프와 달리 나는 이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서 뭔가 턱 막힌 기분이 든다. 


3년 전 MBA 졸업 시 미국 취업을 포기하고 복직했다면 한국의 평생직장으로 돌아가 안정적인 생활을 계속할 뿐 아니라, 2억 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전 직장에 반환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한국은행과 서울대라는 간판이 있으니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주눅 들 일도 없었겠지. 시간만 조금 내면 가족이든 친구든 원하는 대로 만나 회포를 풀 수 있을 거고.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가 장애인에게 너무나 척박한 환경이며, 아이가 그곳에서 성장하면서 겪게 될 어려움들을 생각하니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국에서의 삶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내 미국 생활은 행복한가? 


    



아침에 미세먼지 없는 공기를 마시며 걸을 때, 붉게 물들어가는 석양을 바라볼 때, 아이가 이전에 하지 못하던 말과 행동을 보여줄 때는 절로 이곳에 살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된다. 꽤나 터프한 문화의 한국계 회사에서 일하긴 하지만 한국 직장생활 특유의 눈치 야근 및 회식과는 몇 광년 정도 떨어져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미국 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치안도 좋고 인종 다양성도 높은 북버지니아에서 좋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그렇다.


하지만 한국의 장점을 뒤집으면 고스란히 미국 생활의 단점이 된다. 평생직장은 고사하고 몇 달 뒤에 이 회사에 계속 다닐지 조차 장담할 수 없는 미국 특유의 직장 불안정성이 첫째고, 언어도 부족하고, 피부색도 다르며, 들어보지 못한 대학교를 졸업한 이민자로서 크든 작든 평생 느껴야 하는 소외감이 둘째다. 30여 년간의 한국 생활에서 단 한 번도 졸업 학교나 회사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나에게 '중소기업에 다니는 아시아인'이라는 포지션은 꽤나 어색한 옷이었다. 마지막으로 결혼, 장례 등 대소사가 있어도 가족, 친척, 친구들의 얼굴을 보기 어렵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꽤나 아프다. 2-3년에 한 번 가족들을 보러 귀국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이민 생활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얼굴을 보고 한잔 기울이는 게 당연한 친한 사람들에게 기껏해야 전화 한 통화로 축하나 위로를 전하다 보면 가슴도 아프고 나 스스로가 쪼그라드는 기분이 든다. 


만약 아이가 자폐인이 아니었다면, 아이가 미국 학교와 사회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몰랐다면 아마 두 번도 고민 안 하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텐데. 미국에 살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도, 한국에 갔으면 힘들 일이 엄청나게 많았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미국에 살아서 행복하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몇 년이 지나 이곳에서의 삶이 익숙해지면 좀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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