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 Kim Dec 07. 2022

한국이 뭐길래 이렇게 아플까

(5년 만의 만남) 약 3주 반의 긴 휴가를 한국에서 보냈다. 2017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여유 있게 돌아온 한국. 이번 여행의 주제는 '생존 신고'였기에 최대한 많은 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려 했다. 미리 계획된 해외 이주였다면 애초에 출국 전에 석별의 정을 나누었으련만, 나의 경우는 2년간의 단기 연수 후 급격히 인생의 경로가 바뀌면서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케이스였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만남에서는 간단한 인사 이후 곧바로 "갑자기 무슨 일로 이민을 간 거냐? 미국은 살만하냐?"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아이의 자폐와 미국의 환경을 얘기하고 나면 대부분 안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라고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때 다른 반응을 보일 것 같지는 않지만, 글쎄, 그 상황이 썩 유쾌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또한 ‘아, 이번이 아마도 마지막이겠구나’ 싶은 만남들도 있었는데, 꽤나 섭섭한 경험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안부를 묻고 그동안 있었던 일만 나누어도 금세 헤어질 시간이 되어 다음을 기약했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대화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당연히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왜 타국 살면 인연이 많이 정리된다고 하는지는 조금 알 것 같더라.

 

(이방인) "누가 보면 관광객인 줄 알겠네" 서울 시청, 종각, 강남역 등 주요 명소의 사진을 찍는 나 스스로가 우스워 한마디를 던진다. 매일 생각 없이 지나치던 서울 한복판의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어떨 때는 서울의 거친 운전과 콧속이 매캐한 공기까지 반가울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시리게 깨닫는다.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족 행사) 긴 휴가를 내기 힘든 10-11월에 굳이 한국 행을 택한 이유는 가족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귀국한 바로 다음날 오전 장모님께서 심각한 뇌출혈로 수차례 수술을 거치고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급히 아내와 아들의 비행기 표를 바꾸고, 장인어른과 여러 경우의 수와 대책을 논의하고, 그 와중에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3주나 되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처음에는 '몇 년 만에 한국 왔는데 하필 지금 이런 일이 생기나' 싶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오히려 지금이기에 같이 아파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차라리 이게 백배 나으리라. 또한 경황이 없는 이 와중에 별 탈 없이 결혼식이 치러지고 계획대로 출국할 수 있었음에도 감사할 따름이다.


(새로운 고민) 부모님이 미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실 때마다 공항에서 아쉬운 작별 인사로 건네던 한마디.


"잘 가요! 건강하시고 다음에 봐요!"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부모님도 장인어른도 머지않아 70, 80줄에 접어드실 것이다. 건강이 크게 안 좋으신 분은 없지만 장모님의 사례처럼 언제든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할 것이 없는 연세이기도 하다. 같은 한국 땅에 있다면 평소에 자주 찾아뵙고 무슨 일이 생겨도 몇 시간 내에 갈 수 있으련만, 미국에 있다면 일 년에 한 번 찾아뵙기도 힘들뿐더러 만약 무슨 일이 생겨도 시차와 비행시간 때문에 상이 다 끝나고 발인 때나 도착하게 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아들 태민이의 자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미국 생활이라지만 이 핑계로 큰 불효 하는구나 싶어 인천 공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내 몸과 마음은 정상과는 거리가 멀다

다 포기하고 내려놓으면 끝일 줄 알았는데 아직 시작도 아니라는 것

언제쯤이면 출국장에서 눈물짓지 않게 될지, 지나간 기회와 인연에 아쉬워하지 않게 될지 

지금은 그저 가슴 깊은 곳에서 응어리진 한숨만 내쉴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에 살아서 행복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