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 Kim Jul 20. 2022

우영우 신드롬이 씁쓸한 이유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다. 방영한 지 한 달 남짓 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xtraordinary Attorney Woo)'는 주연 배우 박은빈의 놀라운 연기와 자폐인 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법정 드라마라는 특이한 소재에 힘입어 엄청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심지어 먼 미국 땅에 있는 나조차 이 드라마를 보고 있고, 주변 한인들에게 물어봐도 한 두 편 안 본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다. 


솔직히 말해 내가 방송사 임원이었다면 이 기획을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폐인의 부모로 살고 있기에 한국 사회가 장애인, 그중에서도 지적 장애인에게 얼마나 냉정한지 잘 알고 있을뿐더러, 장애란 소재는 잘해 봐야 본전이고 잘못하면 온갖 곳에서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사인 ENA는 용감하게 도전했고 대 성공을 거두었다. 자폐인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의 흥행은 최소 20년은 기다려야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작금의 상황을 보면 꽤나 얼떨떨한데, 생각해보면 조승우가 자폐인 마라토너로 열연한 영화 '말아톤'이 나온 게 거의 20년 전이다. 어쩌면 내가 한국 사회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일지도?






일단 좋은 점부터 짚고 넘어가자. 매일 자폐아동과 사는 우리 부부가 첫 화를 보고 '연기 정말 잘한다'라고 감탄을 내뱉었을 정도로 배우 박은빈의 연기는 놀랍다. 우영우가 보여주는 애매한 시선 처리, 반향어 (echolalia, 상대의 말을 메아리처럼 따라 하는 행위), 눈이나 귀를 막는 행동 등은 실제로 아들 태민이가 매일같이 보여주는 것들이다. 비 자폐인으로서 이 정도의 연기를 하려면 얼마나 연구하고 노력했을지 짐작이 가기에 한 명의 시청자이자 전 아마추어 배우로서 박은빈 씨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한 한국처럼 장애에 부정적인 사회에서 이런 주인공을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가고, 매 화마다 비 자폐인들이 잘 모르는 자폐인의 특성을 극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연출 솜씨에도 엄지를 치켜들고 싶다. 예를 들어, "자폐의 공식 명칭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Autism Spectrum Disorder)'이며, Spectrum이란 말이 나타내는 것처럼 같은 자폐인이라도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다른 증상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비 자폐인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3화에서 중증 자폐를 앓고 있는 피의자와 우영우를 본 시청자들은 내가 위에 길게 설명한 (저것도 최대한 압축한 것이다!) 내용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다. 우영우처럼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사람은 자폐인 중 극히 일부분이라는 걸 혹시 아시는지? 자폐 혹은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이 읽은 모든 것을 암기한다거나, 한번 본 풍경을 몇 년 후에 사진처럼 그려낸다거나, 한번 들은 음악을 바로 따라서 연주한다거나 하는 증상을 서번트 증후군 (Savant Syndrome)이라 부르는데, 아쉽게도 이런 천재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은 약 백만 명 중 한 명 꼴이며 전세계적으로 100명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주변의 자폐인 부모에게 어떤 위로를 건넬까?


 "우영우 봤지? 당신 아들/딸도 얼른 저런 재능을 찾아 줘야지"


실제로 아들의 자폐를 공개하고 난 뒤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이런 류이다. 당연히 악의 없이 위로하는 말임을 잘 알지만,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폐인의 부모로서 느끼는 무력감은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또한 극의 재미를 위해 자폐인들의 특성을 필요 이상으로 부각한 점도 '꼭 저랬어야 했나?'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시청자들은 우영우의 '우스운' 행동 - 노크 후 손가락을 꼽으며 숫자를 세고 방에 들어가거나, 회전문을 통과하지 못해 앞에서 펄쩍펄쩍 뛴다거나, 상급자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소재의 이야기가 나오면 정신없이 자기 얘기만 한다거나 - 을 보면서 그저 신기해하거나 실소를 머금겠지만, 나는 자폐 아동의 아빠로서 감정이입이 너무 심하게 된 탓에 몇몇 장면은 견디지 못하고 잠시 멈춤 후 심호흡하거나, 아예 해당 장면을 스킵해버려야 했다. 물론 우영우의 특이함을 보여주고 극에 가벼운 웃음 포인트를 주기 위한 의도일 수 있겠지만, 저런 장면을 보면서 '내 자녀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저런 시선을 받겠구나'라는 생각에 가슴 한 구석이 시린건 나 뿐만은 아니리라. 






'우영우'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인기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떠오르며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린다. 평범한 여주인공이 학교를 대표하는 네 명의 꽃미남들과 밀고 당기며 학교 생활을 하는 하이틴 로맨스. 스토리도 등장인물들도 너무나 매력적이라 가볍게 즐길 수 있지만, 모든 시청자는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부디 '우영우'를 보시는 분들도 변호사 우영우는 정말, 정말 특별하고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사례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혼자 힘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자폐인 조차 굉장히 적다는 사실도. 감히 욕심내 보자면, 어떤 부모님도 '우영우' 드라마를 본 누군가로부터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조금만 더 하면 당신 아이도 우영우처럼 될 수 있다' 류의 조언을 받지 않으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전 11화 자폐 아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