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 Kim Mar 01. 2021

CFA, 10년 걸려 나에게로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 이유

CFA란 Chartered Financial Analyst의 약자로, 고객의 자산 운용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Professional Advisor 양성을 목표로 하는 자격증이다. 수많은 재무 관련 자격증 중 취득이 어렵기로 첫손가락에 꼽힌다. 일단 매년 한 번씩 열리는 시험을 세 번 (Level 1, 2, 3)을 통과해야 하기에 최소한 3년의 준비가 필요하며, 윤리, 경제학, 재무제표 분석, 기업 재무, 통계, 포트폴리오 관리, 주식, 채권, 파생상품, 대체투자 등 정말 많은 항목에 대해 샅샅이 공부해야 한다. 


CFA Institute는 각 시험 단계마다 최소 6개월 (300시간)의 준비기간을 권장하는데, 이는 최소 주당 12시간을 공부에 투자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이는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에 대한 권고라는 것을 간과하지 말자. 영어로 된 교재로 공부하는 어려움을 고려하면 실제 공부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은 더 늘어나는데, 학생이라면 '별 거 아니네' 할 수도 있겠지만 업무에 야근에 가정 대소사에 바쁜 직장인들에게 이는 어마어마한 부담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퇴근 후 2시간씩 공부해야 14시간이다). 또한 재정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다. 세 차례 시험의 응시비용만 해도 3,500불에 달하며 학원 수강이나 교재 구매 등을 포함하면 관련 비용은 훨씬 더 늘어난다. 


CFA를 취득한다면 무얼 할 수 있을까? 한국이든 미국이든 은행, 증권, 자산운용 등 다양한 업계 입사에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물론 이 자격증이 있다고 무조건 뽑아가는 것도 아니고,  실무 경험 없이 입사하자마자 바로 펀드를 운용하거나 고객에게 자산 운용 상담을 하는 것도 현실성이 없는 얘기다. 하지만 내가 재무 전문가임을 채용담당자나 고객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자격증의 효용은 결코 작지 않다.   







1차 (Level 1)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제일 낮으며, 재무에 발을 담가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도전을 고려하는 시험이기도 하다. 풀어야 하는 문제의 수가 많기는 하지만 (객관식 180문항) 그 때문에 복잡하거나 난이도 높은 문제가 많이 출제되지 않는다. 필자 생각으로는 학부 때 경영학을 전공했거나 재무 관련 업무를 하시는 분이라면 3개월 정도면 충분하며, 배경 지식이 없어도 6개월 제대로 공부한다면 합격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단 신청해놓고 생활에 바빠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래서인지 합격률은 늘 40% 초반에 머문다.


필자의 경우 2010년 여름에 첫 시험을 치렀다. 첫 직장에서 재무 부서에 배치되었기에 '따놓으면 업무에 도움이 되겠다'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준비를 시작했던 것 같다. 학부도 경영학을 전공한 데다 원래 재무 관련 공부를 열심히 해서인지 3개월 공부하고 시험을 치렀는데도 그다지 어렵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고, 손쉽게 합격할 수 있었다.


2차 (Level 2)


1차와 완전히 다른 시험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필자는 1,2,3차 중 2차 시험의 준비 기간이 가장 길었고 체감 난이도도 제일 높았다. 누구나 볼 수 있는 1차 시험과 달리, 1차를 통과한 검증된 수험생만 응시하는데도 합격률이 40%대라는 것은 2차 시험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다행히 객관식이긴 하지만 (88문항) 물어보는 난이도가 1차와 완전히 다르다. 필자의 경우 2013년에 친한 후배와 함께 6개월간 스터디를 하면서 준비했는데도 시험을 치르면서 망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고, '내가 이거 다시 하면 인간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씁쓸하게 시험장을 나와야 했다. 


탈락 이후 2015년까지는 아이의 출산, MBA 유학 준비로 인한 점수 만들기 (GMAT, TOEFL)로 인해 정말 정신없이 보냈으며, CFA는 아예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커서 손도 덜 가고 시험 점수도 다 만들고 나니 언제부턴가 끝내지 못한 숙제가 마음속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2013년 시험 당시의 처참했던 기억도 어느새 희미해졌고... '유학 나가기 전에 한 번만 더 해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을 먹고 다시 시험을 준비했다. 지난 탈락의 아픔이 있어서인지 거의 7~8개월 가까이 치열하게 준비했고, 다행히 합격 이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3차 (Level 3)


많은 한국인들이 부담을 크게 느끼는데, 이는 절반이 주관식이기 때문이다. 실제 고객을 상대하는 것처럼 자산 배분 아이디어를 기술하거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이유를 설명하는 등 (당연히 영어로) 단순히 답을 고르는 것을 넘어 내가 내놓은 답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다행히 CFA는 응시자의 영어 실력을 측정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문법과 예쁜 문장에 공을 들일 필요는 조금도 없다. 필자는 대부분의 답을 Bullet Point로 요점만 간결히 정리했고, 상위 10% 이내의 성적을 받았다. 


필자에게 3차가 힘들었던 이유는 시험 준비기간에 너무 많은 일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2019년 상반기에 필자는 MBA 졸업 준비 (그나마 부담이 제일 적었다) + 취업 준비 + CFA 공부의 3중고를 겪었다. 미국에 남을 수 있을지 한국에 돌아가게 될지 마음이 늘 싱숭생숭한 상태에서 공부를 하려니 당연히 집중도 쉽지 않았고... 그나마 취업이 확정되고 학교를 졸업하면서 약 2주 간 여유가 생겼고, 남들은 졸업 후 여행과 휴식을 즐겼지만 필자는 하루 10시간 이상 미친 듯이 공부에 매달려야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다시 이만큼 준비할 자신이 없었기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꼭 붙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정말 컸다. 그때의 마음 상태가 어땠는지는 시험을 치르자마자 올린 Facebook 포스팅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Ok. done with CFA exams in my life. I will NOT retake this as I have done more than my 100%. Thanks God for allowing me to have the time and a will to endure this suffering. Get a Charter or say goodbye to CFA institute.


한 공간에서 수천 명이 모여 하루 종일 시험을 치른다






2019년 8월 20일, 사무실 건물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가는 길에 폰을 살펴보니 'Your CFA Program Exam Result'라는 제목의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숨도 쉬지 못하며 메일을 열어 본 순간 눈에 들어온 "Congratulations!" 나도 모르게 환희에 차서 소리를 질렀고,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민망해하며 재빨리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결국 10년에 걸쳐 CFA가 되었. 아래 사진처럼 멋진 상장도 받았고. 하지만 이를 위해 들인 돈, 시간, 노력을 생각하면 어떨 때는 '이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고생했나' 싶기도 하다. 게다가 필자가 현재 근무하는 곳은 IT 회사이기에 CFA 자격증이나 관련 지식을 활용할 여지도 크지 않다. 


10년이나 되는 시간 동안 왜 포기하지 않았을까? 1차, 2차에 들인 시간과 돈이 아까워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경영학도이며, 매몰비용 (Sunk Cost: 이미 투입되어 회복 불가능한 비용)에 의한 의사결정은 비합리적이라는 논리가 뼛속까지 배어있는 사람이기에 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필자가 존경하는 J 상무의 '배워 놓으면 언젠가 쓸데가 다 있다'라는 논리에 동의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저 '내가 포기할 까 보냐'라는 오기 때문일지도. 아직도 '이거다' 싶은 이유를 꼽기는 어렵다. 하지만 뭐, 살다 보면 언젠가 이 자격증이나 지식을 발판 삼아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도 있겠지? 인생 길이 어떻게 풀릴지는 아무도 모르니 일단 하나의 옵션을 더 마련해 놓은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멋지긴 하다. 하지만 그동안 들인 돈, 시간, 노력을 생각해보면...


매거진의 이전글 야구와 골프를 통해 보는 한미간 문화 차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