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 못했던 동문야구단과의 동행
필자가 졸업한 서울고등학교는 1909년에 개교된 유서 깊은 학교이다. 2000년 초봄에 고등학교 추첨 결과를 받았을 때는 '하필 남고에 가다니!'라며 좌절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워낙 학교의 역사가 길고 졸업생들도 많아서일까? 사회생활을 하며 어디서든 동문 선후배를 만나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었기에, 지금은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했음에 감사하고 있다.
필자는 첫 직장인 한국석유공사에서 야구를 배웠다. 석유공사 야구부는 안양의 '석수 체육공원'을 홈으로 하는 '안양 리그'에 가입해 있었는데, 워낙 구장 시설이 좋아서인지 선출 (고등학교 이상 레벨에서 야구를 했던 사람)이나 실력 좋은 아마추어들이 많이 참가했다. 그곳에서 야구하면서 처음으로 서울고 동문야구단 '한솔'의 존재를 알았다. 몸을 풀고 있을 때 팀장 S가 옆구리를 툭툭 치며 "너 서울고 졸업했다지 않았어? 저기 저분들 서울고 동문팀이라던데?"라고 말했고, 필자를 대동하고 그 팀으로 가서 정식으로 인사를 시켜주었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서울고 야구부는 이상훈, 김동수, 안치홍 등 유명 선수들을 배출한 고교야구 강호 중 하나이며, 이로 인해 한솔 팀은 실력 좋은 선출을 손쉽게 영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솔을 상대할 때마다 뻥뻥 터지는 타격에 외야에서 수비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2014년 어느 여름날, 한솔의 선발 투수는 전직 OB 베어스 출신이었는데, 나이가 있어 구속이 아주 빠르지는 않았지만 공 끝의 회전이 어마어마했다. 난생처음으로 바깥쪽 속구 3개에 손도 못 대고 삼진을 당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날따라 수비가 굉장히 잘 되어서 한솔 중심타자들의 장타성 타구를 2~3개 건져냈고, 마지막 회에는 1점 차로 앞선 상황에서 우중간을 가르는 타구를 잡아내어 경기를 내 손으로 끝냈다. 경기가 끝나고 상대 선발투수는 "석유공사가 아니라 김솔이한테 졌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2014년 말, 한솔의 총무 K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석유공사 이제 안양 리그 안 뛴다며? 같이 하자'. 친정팀인 석유공사 야구부는 울산 이전으로 인하여 안양 리그를 떠났고, 친한 친구인 H도 한솔에서 운동하고 있었기에 큰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다.
절정의 타격으로 중견수 골든글러브까지 탔던 2014년과는 달리 2015년은 유난히 타격이 좋지 않았다. 정타로 맞는 타구 자체가 많지 않았고 잘 맞아도 야수 정면으로 향하는 때가 많았다. 총무 K가 농반 진반으로 "작년에 7할 치던 놈이 왜 올해는 그거 반밖에 못 치냐"며 구박할 때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다른 리그에서는 예년과 큰 차이가 없는 성적이었는데 왜 한솔 경기에서만 계속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안양 리그의 S는 필자가 제일 선호하는 심판이었다. 언제나 정확하고 객관적인 판정을 했기에 설령 그의 판정이 불리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석유공사 야구부에서 뛸 때와는 달리, 한솔에 와서는 그로부터 미묘하게 불리한 판정을 받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도 서울고 동문이었고, '혹시나 동문이라 봐준다는 소리 나올까 봐 더 엄하게 하는 거 같다'라는 이야기를 팀원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한 번 두 번 납득하기 힘든 판정이 이어지며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 경기 시작 전 전광판에 뜬 심판 이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제발 이번 경기엔 나오지 말길...'
2016년 여름 어느 날, S는 심판을 보긴 했지만 다행히 주심 (홈플레이트 뒤에서 스트라이크/볼을 판단하는 심판)이 아니라 루심 (베이스에서 세이프/아웃을 판단하는 심판)이었다. 필자는 주심을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 제대로 타격을 하지 못하기에 - 존 근처로 애매하게 들어오는 공도 무조건 쳐야 하기 때문이다 - S가 주심이 아닌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경기 중반, 2~3점 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중간을 시원하게 가르는 타구를 치고 3루까지 내달렸는데 생각보다 상대 팀 야수들의 공 중계가 빨랐다. 자칫 늦겠다 싶어서 슬라이딩을 했고, 몸이 베이스에 닿고 나서야 공이 도착한 걸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 더그아웃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아웃? 분명히 베이스에 먼저 닿았는데 아웃?' 순간적으로 머리에 피가 올라와서 "아니 태그가 늦었는데!"라고 소리치며 헬멧을 집어던졌다. 순간 경기장에 내려앉는 정적. 변명같지만, 필자는 야구를 10년 해오면서 이때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심판이나 다른 사람에게 큰 소리를 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때는 정말 화가 있는 대로 나서 심판이 고등학교 선배이자 삼촌 뻘이라는 사실도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S는 당황했는지 필자를 외면했고, 화가 가라앉지 않은 필자는 더그아웃에 돌아가서도 헬멧을 집어던지고 소리를 질러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운 행동이다.
결국 그 경기가 한솔에서의 마지막이 되었다. 감독은 '동문팀이니 그냥 와서 계속 같이 하자'고 구조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심판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쌓이다 폭발한 것이었기에 도저히 S가 심판으로 있는 리그에서는 야구를 계속할 수 없다는 마음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2년간 함께 했던 동문 선후배들에게는 죄송한 마음뿐이다.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었다면 그만둘 때는 그만두더라도 얼굴을 보면서 고별인사를 했을 텐데, 그 당시 필자의 머릿속은 심판 S에 대한 분노와 이 상황 자체에 대한 황당스러움 뿐이었다. 다시 그들을 그라운드에서 마주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때의 행동과 갑작스런 퇴단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