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방망이를 용접까지 해서 쓰는 이유
필자가 한국은행을 다니던 시절 사무실의 고참 차장이 툭하면 던지던 질문이었다. 그는 쉬는 날이면 무조건 테니스장으로 달려갔고, 사무실에서도 짬이 날 때면 테니스 라켓으로 발리 연습을 할 정도로 테니스 광이었다. 아무리 야구의 매력을 설명해도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만 지을 뿐. 매 분 매 초 전력으로 뛰어다니며 라켓을 휘두르는 것에 익숙한 그에게, 한게임에 많아야 3~4번 타석에 들어서는 야구는 틀림없이 지루한 스포츠일 수밖에 없으리라.
열 명의 사회인 야구 선수에게 위의 질문을 던진다면? 열 가지 답이 나올 것이다. 힘차게 공을 뿌려 타자를 삼진 잡아내는 맛에 야구하는 사람도 있고, 어려운 타구를 잡아낼 때의 스릴을 즐기는 사람도 있으며, 필자처럼 공을 전력으로 후려칠 때의 그 짜릿한 손맛 때문에 야구를 끊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그저 사람들끼리 모여 다 같이 으쌰 으쌰 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아예 게임 끝나고 뒤풀이로 한잔 하는 맛이 최고라는 사람도 있으니 정말 사람은 다 다르다
필자처럼 타격을 좋아해서 야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 꼭 한번 저 담장을 넘겨 보리라' 그가 100kg를 넘어가는 20대의 거한이든 50kg대의 중노년이든 상관없다. 타석에 서서 투수를 마주하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외야 펜스를 노려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인 선수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야구를 접했기에 기본기가 부족하며, 생업에 바빠 연습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도 어렵다. 애초에 시합도 와이프 (혹은 애인) 눈치 보며 겨우 나오는데 연습은 무슨 연습? 이런 형편이다 보니 야구 배트의 성능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배트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어떻게든 담장을 넘기고 싶은 것이다.
세상에 정말 많은 야구 배트들이 있지만 '도깨비방망이' 만큼 초보자에게 좋은 배트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지난 글 (도깨비방망이, 그 치명적 유혹)에서 자세히 다룬 것처럼 '도깨비방망이'란 Easton에서 90년대 후반에 생산한 Z2K 알루미늄 야구 배트를 의미한다. 이 배트는 알로이 (합금) 배트 중 최상급의 반발력과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을 정도의 밸런스 (사용 용이성)를 자랑하며, 공을 때렸을 때의 찰진 손맛 (방망이가 공을 잠시 머금다가 뿜는 느낌이 난다)은 덤이다. 이 덕분에 생산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새 제품은 1~2백만 원, 중고품도 최소 수십만 원에 거래된다.
세상 일이 늘 그렇듯, 장점만 있는 물건은 없다. 도깨비방망이는 정말 치명적일 정도의 내구도로 악명이 높다. 새 제품 구매 후 첫 경기에서 깨진 사례가 있을 정도이며, 특히 배럴 끝 부분에 공이 맞을 경우 높은 확률로 금이 간다. 기껏 수십만 원 주고 사 온 물건이 금이 갔다고 해서 이를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금이 갔다고 해서 배트의 성능이 크게 저하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금 간 도깨비방망이를 용접공의 손에 맡겨서 부활시키기 시작했고, 이렇게 용접된 도깨비방망이를 '용깨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필자도 용깨비를 몇 자루 구비해 놓았었는데, 그 이유는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가격: 배트 한 자루에 수십만 원은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용깨비는 상태에 따라 10만 원 초중반에 구할 수 있었다. ebay에서 금 간 Z2K를 저렴하게 직구해와서 한국에서 용접해서 쓰기도 했는데, 이렇게 하면 10만 원 미만으로도 좋은 배트를 한 자루 마련할 수 있다. 물론 한번 깨진 배트는 언제든 다시 깨질 수 있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반드시 용접된 반대편으로 타격했으며, 추운 날엔 트렁크에서 절대 꺼내지 않았다) 용깨비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이를 무시하기에 충분했다.
2. 마음의 평화: 가격이 저렴하기에 일반 도깨비방망이 사용자들처럼 타석에서 '혹시나 깨지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을 먹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모든 배트는 소모품이고 언젠가는 수명을 다 하는데 타격하는 순간에 배트를 걱정하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3. 후회 없음, 배트 탓도 없음: 잘 맞은 타구가 펜스 앞에서 잡혔을 때, 십중팔구의 타자들은 본인의 힘과 기술이 모자람을 탓하는 게 아닌 '더 좋은 배트로 쳤으면 넘겼을 텐데!'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용깨비를 사용한 이후 필자는 더 이상 배트의 성능을 탓할 수가 없었다. 이거로 못 넘겼으면 어차피 다른 배트로도 못 넘겼을 테니까.
만약 반발력 좋고 다루기 쉬운 배트를 찾고 있는데 예산이 넉넉하지 않으시다면 용깨비를 한번 고려해 보자. 어쩌면 다음 게임에서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환호를 지르며 베이스를 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