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 Kim Mar 07. 2021

돌아가지 못한 자

창단부터 함께한 Dynamic Baseball

대학교를 졸업했던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를 하기 시작했다. 첫 직장인 한국석유공사의 야구부에서 야구를 처음 시작해서 기본기를 배우고 즐겁게 운동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2~3주에 한 번씩 있는 게임 스케줄에 대한 아쉬움이 점점 커져갔다. 결국 팀을 하나 더 가입하기로 마음먹었고, 전국 모든 야구인이 한 번씩은 들르게 된다는 '야용사 (야구용품 싸게 사기)' 커뮤니티에서 서울을 연고지로 하는 팀을 찾았다. 


연락이 닿은 팀은 'Super Monkeys'. 원숭이 띠인 83년생들이 모여서 만든 팀이라고 했다. '팀 이름이 원숭이가 뭐야?' 싶었지만 그런 거야 야구만 재미있게 한다면 아무래도 큰 상관없으니까. 그런데 팀의 총무는 리그비를 받고 나자 잘 연락이 되지 않았다. 드문 드문 이어지고 끊어지는 연락에 의아해질 무렵,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Dynamic의 초대 감독이 되는 B였다. 나보다 몇 달 일찍 가입해서 뛰고 있었던 그는 최근 팀의 분위기도 좋지 못한 데다 총무가 개인적으로 팀 회비를 유용한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자기가 상황을 정리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얼떨떨한 기분에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결국 그의 저돌적인 추진력을 통해 멤버들이 상당히 물갈이가 되었고, 팀명 또한 Dynamic Baseball로 바뀌게 되었다






2010년 중반부터 2013년까지 약 3년 반을 Dynamic에서 뛰었다. 일본의 프로야구팀인 '야쿠르트 스왈로즈' 유니폼을 카피한 Dynamic의 유니폼은 어떤 팀과 비교해도 깔끔한 멋을 풍겼다. 가끔 야구가 있는 날엔 유니폼을 그대로 입고 길거리를 누비고 다녔는데, 지금이야 내가 왜 그랬나 부끄럽지만 그때는 '옷 예쁜데 왜?'라며 하나도 개의치 않아했다.


일부를 빼고는 다들 아예 야구가 처음이거나 초보 수준이었기에 처음에는 이기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 경험이 쌓이고 서로 손발을 맞춰가며 차츰 싸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각자 적합한 포지션을 찾아가면서 팀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즌에는 게임으로, 동계에는 실내 연습으로 야구를 쉬지 않을 정도로 다들 열정이 넘쳤기에 함께함이 즐거웠던 것 같다.


2013년 하순, 플레이오프에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인원 미달로 몰수패를 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감독 B는 팀원들에게 강한 어조로 아쉬움을 털어놓았고, 그렇잖아도 약간의 매너리즘을 느끼고 있었던 필자는 그 일을 계기로 발걸음이 점점 뜸해졌다. 결국 2014년 시즌부터 Dynamic과 필자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좌: 2011년 뛰었던 선린중학교. 운동장 크기가 많이 작았다 // 우: 약 3년간 뛰었던 경원중학교.






2016년 초의 아직은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설 연휴, 용병 경기 (리그와는 별도로 운영자에게 요금을 내고 하는 경기)에서 Dynamic의 K를 만났다. 거의 2년 만이기에 반가워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팀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016년 내내 몇 번씩이나 용병 경기에서 K를 마주치게 되고, 그와 함께 온 다른 멤버들과도 재회하게 되었다. 딱히 나쁜 감정을 가지고 결별했던 게 아닌 터라 반가운 마음이 앞섰고, 결국 2017년 여름 출국 전까지라도 다시 같이 뛰고 싶다는 의사를 팀에 전했을 때 다들 반갑게 필자를 맞아 주었다.  


2016년 서울고 리그 결승전은 꽤나 쌀쌀한 날씨에서 진행되었다. 그동안 쌓아온 실력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우승과는 인연이 없던 터라 다들 '이번에는 꼭!'이라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 상대 팀도 결승까지 올라온 팀이니만큼 만만치 않았고, 경기 후반까지 엎치락뒤치락 혼전이 지속되었다. 


경기 후반 2사 주자 2루에서 돌아온 필자의 타석. 한 점 뒤지고 있었고 마지막 회는 하위타선이라 득점 확률이 낮았기에 여기서 꼭 동점을 만들어야 했다. 2 스트라이크로 몰린 상황에서 필자가 좋아하는 바깥쪽 속구가 들어왔고, 상대 팀 포수는 필자가 못 칠 거라 생각했는지 공을 잡기도 전부터 "됐다!"를 외쳤다. 공을 받아친 순간 들려온 포수의 외마디 비명. 공은 빠르게 1-2루간으로 굴러갔고, 필자는 동점을 확신하며 1루를 향해 질주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2루수는 기대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고, 아슬아슬하게 글러브에 걸린 타구 때문에 결국 Dynamic의 우승 도전은 여기서 막을 내렸다. 아, 내가 조금만 더 타이밍을 빨리 가져갔다면, 조금만 더 강하게 공을 때렸다면...


2016년 리그 결승전 이후 기념 촬영






2017년은 이별을 준비하는 해여서 그랬는지 재미있는 상황들이 여럿 일어났다. 의도치 않게 필자의 전 직장 야구팀인 한국은행 야구부와 Dynamic이 같은 리그에 배치된 것이 발단이었다. 리그 내 여러 팀 등록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었기에 Dynamic에서 뛸 때는 어쩔 수 없이 지금 뛰지 않는 S의 이름과 유니폼을 빌려야 했다. 타석에 들어섰을 때 "김소...아니아니 S 파이팅!!'이라는 응원에 낄낄대기도 여러 번이었고,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에 돌아왔을 때 "어휴, 우리 S가 몇 년 쉬더니 거포가 돼서 왔어"라는 누군가의 농에 팀원 모두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하루에 한국은행과 Dymamic 두 경기가 있을 때는 한 경기를 마치고 구석진 곳에 숨어 재빨리 다른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다음 경기에 나와야 했고, 그럴 때마다 심판의 묘한 눈길이 필자를 향했다.


공교롭게도 출국 전 마지막 경기는 한국은행 야구부 vs Dynamic이었다. Dynamic의 전력이 월등하기도 했고 회사 팀에 대한 의무감도 있었기에 Dynamic에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 한국은행 팀에서 뛰었다. 아군도 적군도 없이 다들 아는 얼굴인 데다 어차피 마지막 경기기에 의례히 갖기 마련인 작은 긴장감도 없이 뛰었던 것 같다. 필자가 높은 뜬공을 쳤을 때, Dynamic의 중출 (중학교 선수 출신) 유격수인 Y는 일부러 비틀거리며 타구를 떨어트려 안타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경기는 예상대로 Dynamic이 넉넉하게 이겼지만, 막판에 한국은행 야구부가 맹추격을 벌이며 점수차에 비해 경기는 꽤나 스릴 있게 진행되었다.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7년의 어느 날, 경기고등학교



Dynamic의 아끼는 후배인 J는 2017년 내내 "형, 유학 다녀오면 꼭 다시 복귀해야 해요"라고 다짐하곤 했다. 필자가 2년간 활동하지 않았던 기억 때문이었으리라. 필자도 별생각 없이 "그래, 내가 뭐 어디 가겠냐"라고 받아쳤다. 하지만 인생은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지금 필자는 미국 버지니아에서 지난 기억을 반추하며 이 글을 적어 내려가고 있다. 나중에 한국에 들르게 되어 J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소주 한잔 기울이며 마음에 알싸하게 남아있는 아쉬움을 털어내고 싶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그래도 함께 했던 그때 참 즐거웠노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심판 판정 하나에 생긴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