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 Kim Mar 11. 2021

자신감과 현실의 괴리

짧게 끝난 미국 야구팀 Orioles과의 동행

2019년 여름, MBA를 졸업하고 Virginia로 이사하게 되면서 새로운 팀을 찾아야 했다. 20만 명에 달한다는 DC 근교의 한인 인구수에도 불구하고 한인 야구리그를 찾는 것은 무척 어려웠고, 어쩔 수 없이 미국 리그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운영진에게 선수를 모집하는 팀이 있는지 문의해야 했다. 다행히 동네 근처에도 3~4개의 아마추어 성인 야구 리그가 있었고, Fedball 리그의 Orioles라는 팀에서 필자에게 연락해와서 이사 온 직후인 7월 초부터 경기에 나갈 수 있었다. 여름이라 시즌이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음에도 연락이 왔던 건 필자가 경쟁이 심한 Austin의 야구 리그 AMBL에서 2년간 운동한 경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첫 경기는 Orioles의 2019년 마지막 리그 경기였다. 감독 K는 '이미 playoff 진출은 확정되어 최소 2경기는 더 할 거다'라며 웃었고, 놀랍게도 필자가 첫 경기부터 선발 라인업에 들어가 있었다. 아쉽게도 세 타석 모두 범타에 그쳤지만 투수의 구속이나 야수들의 움직임, 타자들의 배팅 모두 AMBL보다 한수 아래였고, 내년 시즌에 하던 대로만 하면 최소한 선발 라인업에 포함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년 7~8월간 세경기의 playoff 게임에 참가했다. 팀의 잘하는 선수들이 총출동했고, 당연히 선발 라인업에 들어갈 수 없었다. 상대 팀들도 강팀이었기에 모든 경기들은 타이트한 투수전으로 진행되었고, 어떤 경기는 양 팀 선발투수들이 모두 9이닝을 완투하면서 도합 26개의 삼진이 나오는 것을 보기도 했다 (참고로 야구의 한 경기 최대 out 개수는 54이며, 이 정도의 삼진 숫자는 투수가 타자들을 완전히 압도해야 가능하다). 물론 playoff 진출에 필자의 지분은 0%였기에 선발 라인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었고 교체 투입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지만, 3경기 내내 나갔음에도 단 1이닝 대수비로만 투입될 때는 살짝 아쉽기도 했다. '나도 수비는 쟤들보다 딱히 뒤처질 게 없는데'하는 아쉬움. 하지만 새 멤버가 기존 멤버와 실력이 비슷할 때는 당연히 기존 멤버에게 우선권이 있는 것이 불문율이기에 아쉬움을 삼키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었다. 


2020년 봄, Covid-19의 습격으로 시즌 개막조차 불투명했고 많은 리그들이 시즌 운영을 포기했지만 Fedball은 엄격한 방역수칙과 함께 리그를 강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반적으로 아래 사진처럼 심판은 포수 뒤에서 투구를 판정해야 하지만, 타자 & 포수 & 심판 세 명이 붙어있는 상황을 막기 위해 심판을 투수 뒤로 이동시키기로 했다 (이 경우 볼 판정의 정확도가 떨어지게 된다). 또한 모든 선수들의 마스크가 의무화되었고, 경기장 내에서 침을 뱉는 것을 금지했으며, 더그아웃에서도 6피트 거리두기를 실시해야 했다. 물론 이를 통해 감염을 100% 막을 수야 없겠지만 이 정도의 수칙이 있다면 일상생활보다 딱히 더 위험할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여 2020년에도 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 







리그 첫 경기의 상대 선발 투수는 대학 리그 All Star '현역' 선수였다. 130km대 중후반에 달하는 구속도 장난이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그의 패스트볼이 특별했던 건 뱀처럼 홈플레이트 앞에서 솟아오르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살벌한 공 회전과 움직임은 난생 처음이었고, 한가운데에 들어온 공에 배트를 돌렸는데도 아예 스치지도 못하고 입맛을 다셔야 했다. 2 스트라이크에서도 투수는 유인구 없이 곧바로 직구로 승부했고, 바깥쪽으로 꽉 차는 공을 보며 스윙하는 와중에 '삼진이겠구나' 생각했지만 운 좋게 배트 끝에 걸린 공은 1루수, 2루수, 우익수 모두 잡을 수 없는 행운의 바가지 안타가 되었다. 1루로 뛰어가면서 '올 시즌은 시작이 좋네!'라고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고, 남은 두 타석을 삼진과 땅볼로 끝냈지만 그것이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 30대 중반의 사회인이 대학리그 올스타 좌완 투수에게 안타를 쳤는데 불평이 나올 리가? 다음 경기도 마찬가지로 선발 출전했고, 세 타석 동안 안타를 치지는 못했지만 그것도 잘 맞은 장타성 타구가 수비수에 걸린 불운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워낙 팀의 출석률이 좋았기에 보통 경기당 14~16명의 팀원들이 참석했고, 선발과 교체출전이 반복될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다음 경기도, 그다음 경기도 교체 출전이었고, 수비를 몇 이닝 하다가 교체로 타석에 한번 들어가는 것이 끝이었다. '오케이. 두 번 선발 + 두 번 교체 출전했으니 다음 경기에서는 아마도 선발 출전, 혹은 이른 교체 출전을 하지 않을까?' 짐작했지만 다섯번째 경기에서는 다른 타자들이 다섯 번째 타석에 들어갈 때까지도 교체 사인이 없었고, 다른 팀원도 '너 아직도 안 들어갔어?'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10년간 야구를 하면서 감독들이 신경 써야 될 문제가 많다는 것을 배웠고, 출전 결정은 어디까지나 감독의 권한이기에 그동안은 불만 표출을 자제해왔지만 그날 경기를 끝내고 나서는 감독에게 이메일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라인업은 당신의 권한인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이전에 뛰던 리그에서는 좀 더 기회를 균등하게 배분했어서 그런지 한 경기에 1회의 타석만 들어서는 상황이 세 번이나 반복되는 게 당황스럽다'. 이에 대한 감독의 답은 '팀이 점수를 많이 내지 못한 상황에서는 대타를 넣기 쉽지 않다. 타격 실력만 놓고 보면 너를 경기 선발 라인업에 자주 넣기는 어렵다. 하지만 너는 수비에서 팀에 충분히 기여하고 있다'. 서로 정중히 의사를 표현했고 절충하기 힘든 입장 차이가 있음 (필자는 타격 때문에 야구를 하는 것이지만 감독은 수비에 주로 투입하고 싶음)을 이해했기에 결국 퇴단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의 답변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는 참 친절한 사람이기도 했고. 하지만 필자 입장에서는 실력을 증명할 기회조차 별로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물론 압도적인 실력이 있다면야 대타로 나오는 타석마다 안타든 볼넷이든 결과를 내고 주전으로 승격되었겠지만, 한국 사회인 리그라면 모를까 미국 리그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야기이다. Fedball의 경우 Austin에서 뛰던 AMBL 리그보다 수준이 좀 낮다는 느낌이었기에, 조금만 더 기회가 있었다면 충분히 실력을 증명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아직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씁쓸한 경험이긴 했지만, 이 일을 통해 자신감이나 실력이 꼭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부족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필자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고 팀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준 Austin Braves 친구들에 대한 감사함도 새삼스레 되새기게 되었다. 어찌 되었건 올해는 새로운 팀에서 시즌을 시작해야 하고, 그저 최선을 다해서 내 실력을 증명하는 길 밖에 없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돌아가지 못한 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