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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Mar 26. 2021

용병 야구의 추억 (2)

남양주 '에코 야구장'

필자는 야구를 워낙 좋아한다. '쟤는 야구하려고 돈 버는거 같아', '직업이 야구고 취미로 일하는거 아니냐'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으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실 것이다. 양가 모두 서울 혹은 근교에 사시기에 설/추석 연휴는 언제나 용병 경기 다니는 날이었으며, 몸이 좀 찌뿌둥하다 싶으면 월차를 내고 야구하러 가기도 했다. 당연히 주말은 야구하는 날이었고. 제일 열심히 다녔던던 건 2014년인데, 1년 동안 자그마치 88경기 397타석을 소화했다 (프로야구가 1년에 144경기다). 1년이 52주이니 눈/비로 공친 주말을 제외하면 평균 주당 2경기 꼴이 된다.  


이렇게 야구를 많이 하려면 당연히 리그 뿐 아니라 용병 경기도 많이 다녀야 한다. 서울, 경기, 인천에 있는 많은 야구장에서 운동해 봤지만 '용병 경기'하면 필자의 머리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건 바로 남양주 별내면에 위치한 '에코 야구장'이다. 






에코 야구장은 별내면 소재 '에코랜드'안에 위치해 있다. 서울 동쪽이나 북쪽에서 차로 약 30~50분 거리다. 에코랜드는 수영장, 축구장, 야구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야구장에 도착하려면 다른 시설들을 지나 경사 높은 산길을 몇분 운전해서 올라가야 한다. 오르막길이 끝나면 두 면의 널찍한 인조 잔디 야구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래 사진에서 보실 수 있듯 야트막한 좌측 담장 너머 멀찍이 보이는 산의 풍경이 기가 막히다. 타석에 서면 왠지 저 산등성이까지 공을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구칠 때도 있다.




에코 야구장 용병 경기의 장점은 주중과 주말,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 최소 세번씩은 경기가 잡혀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아무 때나 가도 된다. 필자가 한창 용병 경기를 다니던 2013~2017년에는 주중에는 1만원, 주말에는 1.5~2만원의 게임비를 내면 2.5~3시간의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또한 9명의 타자로 구성된 리그 타격 라인업과 달리, 이곳에서는 게임비를 많이 받기 위해 선발투수, 구원투수도 추가된 11명짜리 타선 라인업을 운용하였다. 11명 라인업에서는 타격 순서가 꽤나 늦게 돌아오기에 필자는 보통 지명타자 + 야수 두 포지션을 동시에 신청하여 간 김에 최대한 많이 치고 오려고 했다. 필자 뿐 아니라 꽤 많은 야구 중독자들이 이런 전략을 사용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아예 양팀 지명타자 자리를 동시에 예약하여 수비 없이 타격만 하다가 집에 가기도 했다. 






용병 경기에서 가장 늦게 차는 포지션이 포수이다. 게임 내내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야 하는데다 온갖 장비를 차야 하는 탓에 조금만 날이 더워지면 온 몸이 금새 땀범벅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야구장에서 포수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판촉 (?) 행사를 벌인다. 포수 장비 무료 대여는 기본이고, 게임비를 절반만 받거나 아예 안 받는 곳도 있으며 심지어 포수를 2회 하면 1회 무료 용병 이용권을 주는 야구장도 본 적이 있다. 에코 야구장도 마찬가지로 포수는 언제나 무료였는데, 필자는 포수를 보면 방망이도 안맞는 탓에 자주 포수를 보지는 않았지만 가끔 용돈이 부족할때는 지명타자 + 포수를 신청하기도 했다. 물론 경기 막판에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으며 '내가 왜 그랬지' 늘 후회했지만.


또 하나 기억나는 점은, 경기마다 MVP를 선정해서 경품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해당 경기 22명의 선수 중 가장 잘한 선수를 뽑는 것이며 용병 경기에서는 선수들의 수준이 높으니 선정되기 쉽지 않다. 실력도 좋아야겠지만 그날의 운도 꽤나 작용하는 것이다. 2014년이었나 2015년이었나 9타수 6안타에 중견수로 여러번 호수비를 기록하면서 MVP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상품은 두루마리 휴지 세트였다. 그 때는 '야구 경품이 왜 휴지야?'라며 실소를 금할 수 없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운영자가 '진짜 고객'까지 고려하여 경품을 선택한 것 아닌가 싶다. 집에 와서 경품을 건네며 "야구 잘해서 받아왔어"라고 의기양양히 말했을 때 와이프의 표정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사회인 야구 선수의 출전 결재권자 (혹은 주적)가 와이프임을 고려하면, 경영학과까지 나온 필자보다 용병 경기 운영자가 마케팅에서 몇 수 위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출국 전 여유가 있을 때 정말 매일같이 용병 경기를 다녔는데, 마지막으로 이 곳을 방문한 것이 어느 새 4년 전이다. 그 사이에 야구장 인조잔디도 교체하고 시설도 많이 개선했다고 한다.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가게 되면 꼭 다시 한번 들러서 얼마나 좋아졌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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