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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leap Sep 29. 2016

구수물탱-한 커피의 맛

후각은 그 무엇보다 예민하고 오래가는 기억이다.

커피를 즐기지는 않는다. 사실 커피맛을 잘 모른다. 그렇지만 커피를 주로 파는 카페에 가는 걸 좋아한다. 앉아 있다 나오면 옷에 배는 커피 향이 좋아서다. 특히 겨울철에는 자켓 칼라에 커피냄새가 배는 게 너무 좋다. 겉옷을 입고 카페를 나서서 지퍼를 끝까지 올리는 순간 숨에서 커피향이 배어나온다. 그 순간이 참 행복하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냄새를 풍긴다. 하지만 그 냄새를 가장 모르는 건 자기 자신이다. 이미 기억속에 충분히 각인되었기에 새로이 느낄 필요가 없는 걸까.


얼마 전 엄마를 꼭 안으며 엄마 냄새를 맡아보려 했다. 엄마의 몸에선 비누 냄새가 약간 났다. 집에서 빨래한 내 옷을 꺼내 입을 때 나는 진한 냄새와는 다른, 아주 약하디 약한 비누 냄새가 약간.

왜 엄마의 냄새를 진하게 맡지 못하는 걸까, 생각했다. 엄마 냄새가 곧 내 냄새였기 때문은 아닐까도 싶었다. 아마도 그래서였겠지. 이미 충분히 익숙한 그 냄새. 내 냄새가 엄마에게서 나온 냄새였기 때문이겠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양쪽에 앉는 사람들이 계속 바뀐다. 어느 역인가에서부터 내 왼쪽에 앉아있던 아주머니는 노란색 대형마트 비닐봉투같은 걸 갖고 있다. 스며들 듯 조금씩 우유를 넣어 만든 빵의 냄새가 난다. 빵냄새. 부드럽고 약간은 끈적이는 우유가 들어간 빵의 냄새가 난다. 오른편에는 커다란 빨간색 캐리어를 든 아저씨가 앉아 있다. 위협적으로 손마디를 꺾어 두두둑 소리를 낸다. 손에는 금반지가 끼어 있었던가. 그런데 흘끗 보인 옆얼굴은 나이들어 보인다. 손자가 두살 정도 되었을까, 생각해보게 하는 나이든 할아버지의 얼굴이다. 갑자기 향수냄새가 느껴진다. 아까부터 이 향수냄새가 났던지 잘 모르겠지만, 그랬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이 냄새가 올 곳이 없으니까. 이 아저씨가 내리고 잠시 후 다른 아주머니가 내 오른쪽 자리를 차지한다. 푸른빛 보라색 꽃무늬가 흰 바탕 위에 가득한, 왜 아줌마들이 잘 입는 그 폴리 소재의 티다. 그 위엔 검은색 조끼를 입은 것도 같다. 무릎 위에 미색바탕에 검갈색으로 체크무늬가 그려진 작은 종이봉투를 안고 있다. 양 손으로 깍지를 껴서 붙잡고 있다. 그 안에는 묶인 검은 비닐봉지가 둥글게 들어있다. 이 아주머니가 앉자마자—
종이봉투라고 생각했던 그건 사실 폴리인지 천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손가방, 장바구니였다. 들고 내리는데 뭔가 포삭-하는 소리를 내며 아주머니의 손에 붙잡힌다.
분식집의 튀김 냄새가 난다. 기름 절은 내보다 정말, 튀김 냄새. 오징어, 고구마, 단호박같은 걸 튀겨 진열해놓은 길거리 분식집에서 내는 그 튀김의 냄새가 난다. 이 아주머니는 튀김을 만들어 파는 걸까. 아니면 튀김을 사다 집에 있는 자식들에게 먹이려고 사 가는 중인 걸까. 궁금하다.


그리고 다음에 내 옆에 앉게 되는 사람들에게선 어떤 내음이 나나 궁금했다. 그래서 신경을 써보려 하니 그냥, 어릴 땐 잘 씹지 않던,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찾게 되던 그 껌 냄새가 나더라. 약간 달콤하면서도 따뜻하고 시원한 민트 향. 그게 약간 풍겨오는듯 하다 말더라 그냥. 그래서 잊어버렸다. 누군가의 내음에 대한 생각을 더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냄새에 관한 생각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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