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아내/여자친구한테 운전 배워도 될까요?
엄마는 결혼 후에 운전면허를 따셨다. 운전연수도 아빠한테 받았다. 가족에게 운전을 배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보이는데, 그러지 말란 말이 많다. 요즘은 사실 그런 걸 많이 못 보는데 내가 십 대 때까지만 해도 텔레비전에서 남편이나 남자 친구에게 운전을 배우는 여성 캐릭터를 많이 봤다. 그런데 이렇게 운전을 배우는 상황에서 나오는 말은 ‘운전을 배우다가/가르쳐주다가 많이 싸운다’, ‘아내나 여자 친구의 운전을 직접 가르쳐주지 말아라’는 거였다. 실제로 한 지인도 지금보다 어릴 때 남자 친구한테 운전연수를 받았는데 그때 정말 많이 싸웠다는 얘기를 재밌게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왜? 그리고 왜 하필 이런 이야기 속 운전자는 여성일까?
내가 차를 사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부모님은 절대 친구를 차에 함부로 태우지 말라고 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보다 더 중요한)는 내가 운전을 안전하게 한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태라서 다른 사람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너무 중요하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십 대 초반일 때부터 보아온 건, 차가 생기면 당연히 친구들(사실 그땐 차를 가진 건 선배가 대부분이었지만)을 한 번은 태워주는 모습이었고, 친구들과 함께 어딜 가는 데 있어 차가 있는 사람이 친구를 태우니 않고 가는 건 정말 이상했다. 그래서 차가 생기기 직전까지 나도 “차 나오면…”하고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자는 얘기를 많이 했다.
두 번째는 동승자가 있으면 주의력이 떨어지고 동승자가 운전자를 흥분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꼭 차에 동승자를 태운다면 도움을 줄 수 있고 운전을 많이 해본 어른(이것의 예는 곧 아빠나 오빠였지만..)이 탈 수는 있어도 친구는 태우지 말라고도 했다.
처음엔 부모님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그런데 정말로 차가 생기고 운전을 해보자 이 말이 맞더라. 스스로의 운전이 안전하다고 확신이 들기 전에는 실제로 누구를 태우지 못하겠었다. 책임질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태울 수 없다는 걸 잘 설명하는 게 항상 서로에게 더 좋았다. 그리고 동승자가 있을 때 주의력이 절반도 안 되게 떨어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혼자 운전할 땐 오로지 운전만 신경 쓰지만, 아무 말 없이 있어도 누군가가 존재하면 운전에만 신경 쓸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운전이 아주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동승자를 태우는 게 실제로 더 불편했고 다소 위험하기도 했던 것 같다. 운전자가 운전에만 차분히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동승자는 진짜 능력자다. (그런 면에서 운전 선생님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다..)
운전이 차츰 익숙해지면서 운전을 하는 가족, 운전을 잘 하지 않는 가족, 운전 선생님은 물론, 운전 경력이 많은 어른, 운전을 하는 친구와 못 하는 친구도 다 태우고 다녔다. 반대로 내가 여러 유형의 운전자에게 동승자가 되어보기도 했다. 내가 운전자일 때와 동승자일 때를 통틀어 제일 필요하고 좋은 운전자와 동승자는 모두 흥분하지 않는 차분한 사람이었다. 굳이 운전자가 여성이라고 달라질 건 없었는데 내가 어릴 때 본 텔레비전의 기억은 왜 운전자가 여성이고 초보였을까?
실제로 우리나라에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은 사람을 조회해보면 남녀 차이가 거의 없다(비율로 보면 여자:남자=42:58 정도).
그러나 성별 자동차 등록 대수를 보면 남녀 차이가 확연하다(아래 통계는 서울시 것밖에 구하지 못했지만).
도로에서 여성 운전자의 비율이 적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생긴 오해일지 모르겠다. 물론 수가 적다고 실력이 부족하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내가 왕초보 운전자일 때 겪고 느꼈던 것들은 여자라서 느낀 게 아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운전에 충분히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비슷한 경험을 할 거다. 어떤 이유에서건 초보=여성, 운전 실력=남성이라는 오해 또는 그릇된 인식이 어느 정도는 있어왔던 것 같다. 이런 오해가 과거의 일이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운전자가 되어 만난 여러 동승자들, 반대로 내가 동승자가 되어 만난 여러 운전자들은 이런 인식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