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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leap Oct 28. 2022

네 2종 보통입니다.

기어 변속은 자전거로만 해봤는데요…

동해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조금 서운해서 오대산을 갔다. 소금강의 가을 단풍은 워낙 유명하니 잠깐만 보고 가도 즐겁다. 그 아름다운 곳이 길도 편안하다. 단풍과 계곡에 감탄하며 마냥 걸으면 십여 분마다 절경이라 단숨에 높은 봉우리까지 간다. 평일 낮이어서 삼삼오오 관광을 온 어른들이 있었고 붐비지도 않아 최고의 날이었다.

산을 내려와 출발하는데도 눈앞에 좀 전에 본 아름다운 풍경이 아른거리고 미소가 지어졌다. 소금강 입구에서 빠져나와 고속도로가 있는 곳까지 가는 길은 하나도 막힘이 없는 시골 산길 같았다. 시골 산.길.

여기는 강원도, 그 길은 진부령이었다.


외가가 강원도라서 어릴 때부터 꼬불꼬불 끝없는 커브길은 수도 없이 봤다.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다 보면 올라가는 건지 내려가는 건지도 감이 안 왔는데, 도로 가장자리 절벽의 식생이 미미하게 빈약해지다가 풍성해지는 듯하면 이미 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온 거였다. 미시령 한계령 진부령 대관령. 이 중 대관령은 양떼목장 등으로 지금은 고갯길이 아닌 자연 관광지로 더 인식되어있는 듯하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 가족들과 차를 타고 넘던 고개는 관광지가 아니었다. 폭설이 와서 체인을 감은 차들이 모두 고갯길에 발이 묶이고 하루를 꼬박 지새우며 벗어나지 못한 적도 있는, 정말 어려운 길이었다. 물론 요즘은 어느 고갯길 산길이든 도로가 잘 닦여있고 자동차도 더 안전하고 좋아져서 예전 같은 어려움은 거의 없을 거다. 내가 진부령을 넘던 때는 밝은 오후에 날씨도 너무 좋았다. 그래서 아빠 차에 가족들이 함께 타고 고갯길을 넘던 오래된 추억을 떠올리고 웃음지-으며 출발했지만, 고개를 다 넘었을 때 나는 혼이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멈추지 않는 커브길을 몇십 분 동안 계속 달리는 것은 정말, 꽤나 어지러운 일이었다. 계속해서 전/후방이 코너다 보니 다른 차가 어디서 어떻게 오고 있는지도 전혀 알 수 없다. 멈출 수도 없다. 무엇보다 고갯길은 경사도가 계속, 매우 크다. 평상시에 이런 경사도의 길을 오랜 시간 주행할 일은 거의 없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니 엑셀과 브레이크를 계속 잘 밟아줘야 하는 게 당연한데, 이때 내 몸과 차 모두의 긴장도가 평지의 배는 된다.

나는 2종 보통 면허를 가지고 있는데, 기어 변속을 할 줄 몰라도 면허를 땄단 거다. 자전거도 7단을 타지만 기어를 어떨 때 낮추고 어떨 때 올리는지 정확히 이해를 못 했다. 이때 오히려 신난 채로 ’오 고갯길이네 여기서 기어를 연습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정말 큰일 낼 뻔^^ 평범한 자동변속 세단이었던 내 차. 엔진을 엉망으로 망가뜨리거나 브레이크를 다 태워버릴 수도 있었다.

아무튼, 자동변속기 차량도 기어를 바꿀 수 있다. 기어 단수를 조절하면 엔진음이 우웅 하고 다르게 들린다. 그리고 차가 잘 나가는지, 고개를 잘 오르는지 힘들어하는지, 너무 훅 미끄러지는지 천천히 잘 내려가는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기어 단을 내리면 더 제동이 된다는 뜻이다. 1종 면허 소지자인 가족의 설명에 따르면 1단: 20 kph, 2단: 40 kph 이렇게 증가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브레이크를 꽉 밟고 경사로를 내려가는 게 아니라 기어를 낮추면 제동이 더 되는, 엔진 브레이크를 쓰는 게 된다. 자동변속기는 이런 기어 변속을 상황에 맞춰 자동으로 해주는 거지만 눈길같이 미끄러져 제동이 잘 안 되는 상황에서도 엔진 브레이크를 쓰면 된다.

출처: https://myride.tistory.com/m/895, 현대자동차 취급설명서


좀 어지럽고 지쳤지만 무탈하게 진고개를 잘 넘었다. 그러나 가족은 나에게 분명 네 차 엔진은 엉망이 되었을 거라며 깔깔 웃었다는 후문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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