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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leap Oct 09. 2022

왜 차량신호등에는 점멸신호가 없을까.

좌회전: 신호가 있었는데, 없어지면요?

차를 처음 받고 오빠를 조수석에 태운 뒤 동네를 주행했다. 집 바로 앞 도로에는 마침 삼거리, 사거리 그리고 로터리까지 있다. 모두 왕복 4차선 도로이며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는 한적하고 깨끗한 아스팔트 포장도로라서 연습삼아 주행하기에 아주 적절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아파트 앞을 지나 직진하고, 우회전한 뒤, 로터리를 통과했다. 이제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아 좌회전하면 집이었다. 신호등과 나 사이에는 세 대 정도의 차가 있었다. 집중해서 신호등을 바라보고 몇 분이 되지 않아 좌회전 화살표에 초록색 불이 들어오고, 앞에 서있던 차들이 출발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나.

순간 내 귀에 누군가 이런 말을 속삭인 것 같았다.

"야아 빨리! 밟아 밟아!"

가볍게 엑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던 오른발그리고 핸들을 꺾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살짝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아아, 속도! 줄여줄여!"

이번엔 분명하고 큰 목소리였다. 이건 진짜 오빠가 하는 말이었다. 분명 아주 살짝, 조금의 힘이 더 들어갔을 뿐인데 내 차는 그 작은 사거리에서 꽤나 큰 호를 그리며, 꽤나 빠른 속도로 꽤나 위협적인 좌회전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당황해서 속도를 줄이거나 차를 멈출 수는 없었다. 우습게도 1차선에서 출발한 내 차는 2차선 끝자락에 바짝 붙어 있었다. 도로주행 시험에서 좌회전, 우회전을 할 때가 기억난다면 알 것이다. 출발한 차선과 같은 차선에 들어서야 한다는 것을. 맞다. 대략 쪽팔리는 상황이었다.

오빠는 초보 운전자인 나에게 좌회전을 할 때는 속도를 갑자기 높이면 안 된다는 것과 핸들은 각도를 조금만 꺾어도 차의 주행 각도는 크게 한다는 것을 다시 주지시켰다.  그런데, 좌회전을 할 때 속도를 줄이기는 커녕 높이게 된 일이 이후에도 몇 번은 더 있었다. 헤드레스트에 가속 코너링을 즐기는, 불타는 열정으로 온 몸이 시뻘개진 정령이라도 숨어있었던 걸까? 여기서 왜 곡선을 그리며 주행하는 좌회전 상황에서 속도를 더 높였는지 모르겠다, 고 한다면 나는 새빨간 거짓말쟁이다. 나는 내가 왜 그랬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 신호가 바뀌어버릴까 봐 무서웠다. 내가 출발을 하는 순간에 저 화살표의 초록불이 꺼져버릴까 봐, 빨간불이 들어오고 내가 신호위반 단속카메라에 찍힐까 봐, 그리고 다른 방향에서 차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까 봐 너무 무서웠다.

운전자가 아닌 보행자로서 횡단보도를 건널 땐 그런 무서움을 느낄 일이 없다. 횡단보도 신호등은 점멸신호가 있으니까. 그리고 요즘은 대부분의 신호등이 한층 더 친절해져서 빨간불로 바뀌기까지 남은 시간을 초로 세어 보여주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도로교통법상 차보다는 사람이 항상 우선이기 때문에, 점멸신호가 되기 전, 남은 시간이 충분할 때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지만 건너다보니 빨간불이 되어버리는 불행하고 황당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해도 내가 횡단보도를 끝까지 다 건널 때까지 오른편의 차들은 나를 치고 지나가선 안 된다. 그런데 운전자일 때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왼쪽을 가리키는 초록 화살표는 언제 꺼질지 모른다. 그 사이에는 보행자 횡단보도의 신호등처럼 점멸 신호나 초를 세어주는 친절같은 건 없다. 앞에 서 있는 차의 수가 많을수록 불안감과 두려움은 더 커졌다. 내가 좌회전을 시작했는데 신호가 끝나버리는 장면, 그리고 그 순간 오른쪽에서, 왼쪽에서, 정면에서 다른 차들이 달려들어 부딪히는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여기 더해 내가 사거리 중앙에 오도가도 못하고 사방에서 움직이는 차들의 빵빵거리는 소리에 갇혀 다음 좌회전 신호가 켜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끔찍한 상황에 처하는 상상도 됐다. 이 공포에서 벗어나려면 내 눈에 초록색 화살표가 보일 때 재빨리 그 순간을 통과해야했다. 유도선이 있는지 없는지, 내 차가 어느 차선으로 진입하고 있는지도 안중에 없었다. 빨리 다음 도로에서 직진을 하는 상태가 되기만 하면 됐다. 액셀러레이터를 더 세게 밟아서, 핸들을 더 많이 꺾어서, 좌회전이라는 순간에서 0.01초라도 빨리 벗어나려고 했다.

이땐 이런 두려움이 운전자를 얼마나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지는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갑자기 속도를 높이는 일, 특히 좌회전을 할 때 속도를 줄이지 않는지 스스로 보기 위해 대시보드 위에 고무로 된 번호판을 올려두고 다녔다. 속도를 높이면서 좌회전하면 번호판이 스르륵 오른쪽으로 미끄러지는 걸 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좋은 방법은 아니다. 운전 중에 시야에서 뭔가 갑작스럽게 움직이면 그것에 집중이 쏠려서 주의를 방해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서 운전이 조금 더 익숙해졌기 떄문에, 라기보다 좌회전 신호를 수없이 보면서 신호체계를 알게 되고는 이런 불안감이나 두려움, 또 그로 인한 나쁜 운전 습관은 차차 없어졌다. 보통 좌회전 후에는 빨간불이나 빨간불과 노란불이 들어왔다. 눈에 빨간불이나 노란불이 들어오면 절대 출발하지 않으면 된다. 그럼 정답은 '항상 서두르지 않는 것'이 된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릴 때 대부분은 정지한 상태이다. 앞에 차가 얼마나 많이 있든, 천천히 움직이면 신호가 바뀌는 순간에도 느긋하게 출발할 수 있다. 막 출발하려는 때에 노란불이나 빨간불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즉시 멈출 수 있도록 말이다. 쓰고 보니 신호등이 켜지는 순서를 대충이나마 짐작하게 되어서라기보다 서두르지 않는 운전 습관을 기른 것이 더 중요해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조금 여유있게, 안전하게 운전하는 습관을 기르면서 좌회전 유도선도 신경써서 지키게 됐다. 유도선은 두 개 이상의 차선에서 좌회전을 할 수 있을 때 차가 엉키면서 부딪히는 일을 막아준다. 또 맞은편에서 비보호 우회전을 하는 차가 있을 수 있고(물론 신호를 받아 들어오는 좌회전 차량이 우선이지만), 진입한 새 구간에서 이외 어떤 이유로든 발생할 수 있는 혼잡을 막아주는, 안전을 위해서 꼭 지켜야 할 엄연한 차선이다.

운전은 거대한 습관의 집합이다. 습관을 들일 때는 집중력과 반복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운전 습관에 있어서 외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안전, 내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여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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