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차 직장인, 갑자기 일본으로 이주하기
언젠가는 해외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야망 비슷한 꿈을 가진 채 대학생 때부터 영어랑 관련된 경험들을 조금씩 쌓아두었다. 영어회화동아리, 미국 텍사스 교환학생, 영어 학원 아르바이트, 수능 영어 과외, 해외 연사 의전 등 20대 내내 이런 경험들을 쌓다보면 언젠간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당시 3년 간의 콘텐츠 기획자로서의 커리어에서 기업문화 쪽 업무러 커리어 전환을 고민하며 회사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 정규직으로 다녔던 회사에서 만난 동료가 나에게 본인이 최근 입사한 엔터쪽 회사의 직무를 추천해주었다. 엔터 분야로는 갈 생각이 없었으나, 받아 본 회사의 지원 자격 요건에는 '해외 출장 비중 10%'라고 적혀있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주저없이 지원했고 실제로 입사까지 이어졌다. 우연하게 커리어 전환을 하게 된 순간이었다. 입사하고 며칠 간은 팀원들이 영국으로 출장을 가 있어서 인사를 나누지 못하였는데, 이제 진짜 해외 출장 업무도 해볼 수 있는거구나! 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때가 2019년 11월. 그리고 3개월 뒤에 코로나가 터진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는 해외는 커녕 사무실로도 출근을 하지 않고 재택 생활을 지속했다. 그리고 입사해보니 해외 출장을 가는 팀원들은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마 출장의 기회가 온다고 해도, 고작 6개월 교환학생 경험으로는 나에게 먼저 기회가 떨어지진 않겠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역시 워킹홀리데이라도 도전해볼껄 아니면 교환학생 때 6개월이 아니라 1년을 있을껄! 하고 생각했지만 코로나가 터져 워킹홀리데이나 유학을 갔던 친구들이 속속들이 한국에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주어진 자리에 만족하며 살아야겠다는 조용한 안심을 하기도 했다. 교환학생을 15년도에 갔으니 영어를 안 쓴지도 5년이 얼추 되어갔다. 영어는 점점 가물해져갔지만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배우들의 영어 문장들을 알아들으면 '아~ 내 영어 아직 안 녹슬었네.'라고 하며 위안을 했다.(과연) 물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입사한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아 코로나가 터지니 해외 출장이든 영어를 쓰는 업무를 하게 되는 일에 대한 로망이며 꿈이며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코로나로 인해 변화하는 근무형태에 맞는 기업문화 개발에 매일 새로운 업무를 공부하고 새 직장에 적응해나가기 바빴다. 그리고 한국에는 아직 기업문화에 대한 집중을 하는 기업이 많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10년 정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전문성을 키워 '기업문화 전문가'가 되는 꿈을 키워보면 어떨가 하는 새로운 커리어적 으로 나름의 목표를 세워보았다.
그렇게 직장에 적응을 하고 안정기에 접어들던 2020년 10월, 갖은 악재를 겪는다던 아홉수에 연애든 일상이든 더이상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집에서 나가 독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너무 좋아했던 이태원과 남산이 가까운 용산 근처에 자취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한 자취는 역시나 좋았다. 내가 예상했던 그 범위보다도 훨씬 뛰어넘게 좋았다. 벽에 붙인 포스터부터 내가 구매한 책들로 쌓여가는 책장, 난생 처음 내 의지로 키우기 시작한 작은 화분까지 집안 곳곳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언제 일어나고 집에 언제 들어오든 나에게 어떠한 외부 간섭도 없는 공간. 사소한 집안일까지 모든 것이 내가 결정하는 대로 꾸려지는 것에 아주 큰 매력을 느꼈다. 나만의 세계. 나만의 우주.
그 시기에 심리상담을 받던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는데 나는 대체로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 집에 살면서 내 의사가 반영되거나 내가 정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무력감과 답답함 그리고 짜증을 같이 느꼈다는 것도 알았다.
자취를 시작하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점점 내 자신과 1:1 데이트를 하며 친해지는 시기를 보냈다. 내 자신에게 심취해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20대 내내 쉬지 않았던 연애에 대한 욕망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연애를 하며 나는 늘 상대가 나보다 우선이었던 연애를 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너무 좋았다. 서른이 되기 한달 정도 남긴 쯤, 이런 생각들을 하며 나의 휘향찬란했던 아홉수도 어느 정도 끝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