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루 Sep 19. 2022

3. 3개국어하는 남자친구를 만나면

7년차 직장인, 갑자기 일본으로 이주하기 

"다솔아 이번에 나 일본에서 일할 때 만난 후배들이 한국에 들어온다는데 같이 볼래?" 


독서모임에서 만난 지인분이 내가 용산으로 이사왔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사람들을 모아 저녁을 먹자고 했다. 본인이 일본 회사에서 근무하던 당시에 함께 일하던 후배들도 이번에 한국에 들어왔으니 같이 저녁을 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자취를 시작하고 '자유'를 만끽하던 나. 심지어 용산이라서 서울 어디를 가든 가까운 느낌이어서 거칠 것이 없었다. 


약속 시간이 되었으나 모임 주최자였던 지인은 조금 늦게 되었고, 나와 같이 모임에 가기로 한 언니인 EK도 늦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결국 예약되어 있는 자리에 먼저 도착해버린 나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지인분의 지인, 그리고 또 지인분의 지인,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어색하게 먼저 인사를 나눴다. "OO분 지인이시죠..?" 라는 말과 함께. 그 자리에 먼저 와 계셨던 두 분은 현재 일본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코로나가 길어져 잠시 재택이 가능하여 한국에 들어와있다고 했다. 


곧이어 늦는다던 사람들이 모두 도착했고 저녁식사와 함께 서로 소개를 했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나보다 언니 오빠들일거라고 생각했지만, 먼저 도착해있던 일본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 중 한 명인 J는 나와 동갑이었다. 그 날 저녁식사는 술을 부르는 안주로 가득했던 퓨전 다이닝바를 시작으로 지인분의 집까지 차곡차곡 쌓여가는 소주병과 더불어 가며 늦게까지 이어졌고, 우리는 새벽까지 소주를 주구장창 나눠마시다 헤어졌다. 다들 소주가 머리 끝까지 차올라 헤어졌다. 그러던 중 나는 J와 인스타 아이디를 주고 받았다. 


술 잔이 오고가는 와중에도 서로의 첫인상이 좋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자연스레 인스타와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그즈음 코로나가 심해져 저녁 9시 이후에는 모든 식당이 문을 닫고 카페는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게 불가해 퇴근 후 9시부터는 야외데이트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결국 될 연애는 어떻게든 된다고 했던가. 우리는 나의 자취집에서 같이 재택근무를 하며 데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땡큐! 1달 전의 자취를 시작한 나 자신이여! 


일본 글로벌 기업에 재직하던 J가 재택근무를 하러 온 첫 날이자 썸타던 데이트 날. 미팅이 많은 날이라 서로 업무에 방해되겠다며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한 뒤, 이윽고 오전에는 옆 부서와 한국어로 미팅, 오후에는 본인이 속한 팀과 일본어로 미팅, 퇴근 직전 101미팅은 미국에서 일하는 구성원과 영어로 미팅을 하는 것이다. 당시 J에게 호감이 있던 나는 J가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은 알았으나 3개 국어를 모두 사용하며 업무를 하는 것을 직접 보고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충격을 받은 것이 티나지 않도록 놀란 표정을 숨기기 위해 연거푸 커피를 들이켰다. 왠만큼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케이션실에서 미팅도 하고 일도 하면서도 한국어 '커뮤니케이션'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2020년 회사는 본격적으로 일본에도 거점을 두고 사업을 넓히기 시작했는데, 한국 본사의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일본에도 전파해야하는 역할을 맡아 하게 되면서도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어를 잘하는 일본인에게 계속 '이거 통역 좀 해주세요.'라고 요청했던 터라. 내가 일본어를 공부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아예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영어는 잘했나? 당연히 아니다. 우리 회사에서 다른 팀원들이 영어로 일을 하기도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건 어깨 너머너머너머 그리고 옆옆옆팀의 일이라 더이상 내 일이 아니었고, 내가 입사하기 전에 출장을 다니던 팀원들은 이제 모두 코로나로 출장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실제로 영어를 하는 것을 본 적도 없다. 그렇게 영어는 물론 일본어도 배워야겠다는 생각 조차 안해봤던 것이다. 



그럴 때 만난 동갑내기 J가, 심지어 군대도 다녀와서 나보다 2년은 취업이 늦었을 J가! 3개 국어를 사용하며 일하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 속 어딘가 풀이 다 죽어 하천에 둥둥 떠다니고 있던 욕망의 불씨에 불이 스을쩍 지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 02화 2. 아홉수에 깨달은 것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