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맞이 오피스 괴담 제8화
"이번 스마트 공장 전환 프로젝트, 우리 팀에서 맡게 됐다. 강 팀장님이야 워낙 현장 베테랑이시니까 잘 아실 테고, 이 주임은 시스템 구축 담당이야. 노후 설비 전면 교체니까 신경 쓸 게 많을 거야."
본부장의 말에 강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 주임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강 팀장이야 익숙한 일이지만, 이 주임에게는 첫 대형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그는 이번 프로젝트가 단순한 효율성 증대가 아님을 짐작하고 있었다.
회사가 굳이 낡아빠진 이 공장을 최첨단으로 바꾸려는 진짜 이유를.
그는 어렴풋이 들었던 소문을 떠올렸다. 이 공장은 과거부터 유독 산업재해가 잦았다는 이야기.
기계에 몸이 끼어 사망하거나, 고층 설비에서 추락하고, 심지어 감전으로 목숨을 잃은 직원도 있었다고 한다. 공장을 바꾸는 것은 단순히 효율을 넘어, 이 모든 끔찍한 사고의 흔적과 기억을 지우기 위한 것이라는 음침한 소문이었다. 이 주임은 문득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저 오래된 소문이길 바랐다.
다음날 아침, 강 팀장과 이 주임은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이 주임의 심장이 이유 없이 두근거렸다.
거대한 철문 안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기름 냄새와 함께 낡은 기계들이 뿜어내는 묵직한 공기가 그들을 덮쳤다. 강 팀장은 태연하게 발걸음을 옮겼지만, 이 주임은 어쩐지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 주임, 먼저 생산 라인 전체를 파악해야 해. 그래야 시스템 연동 작업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강 팀장의 말에 이 주임은 들고 있던 태블릿을 켰다.
두 사람은 공장 내부로 깊숙이 들어섰다. 낡은 기계들은 거대한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었고, 그 사이를 지날 때마다 '끼이이익', '덜커덩' 하는 쇠 긁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곳곳에 엉겨 붙은 검은 기름때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넘어, 무언가 끈적한 불쾌감을 안겨주었다.
이 주임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설비 정보를 기록했다.
낡은 컨베이어 벨트 라인을 지나던 중이었다.
멈춰있는 벨트 위에 미세한 핏자국처럼 보이는 검붉은 얼룩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이 주임은 순간적으로 흠칫했지만, 강 팀장은 "기름 때겠지. 낡은 공장은 이런 게 많아."라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하지만 이 주임의 눈에는 그것이 기름때가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오후 늦게, 두 사람은 공장 한쪽의 거대한 창고로 향했다. 이곳은 사용하지 않는 기계들이 무덤처럼 쌓여 있는 곳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섬뜩한 냉기가 훅 끼쳐왔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기계들 사이를 지나던 이 주임의 눈에, 천장 가까이 높이 솟아있는 거대한 프레스 기계가 들어왔다. 먼지로 뒤덮여 있었지만, 기계의 아래쪽에는 굳은 기름 같은 검붉은 얼룩이 진득하게 눌어붙어 있었다.
이 주임은 오싹함을 느끼며 기계 주위를 살폈다. 그때였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프레스 기계 옆에 놓여 있던 낡은 작업복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마치 누군가 방금 벗어던진 것처럼. 먼지투성이의 작업복에는 희미하게 찢어진 부분이 있었고, 옷깃에는 굳은 피처럼 보이는 얼룩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이 주임은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물러섰다.
"이 주임, 왜 그래?" 강 팀장이 물었다.
"아... 아뇨. 그냥 작업복이 떨어져서요."
이 주임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그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그는 그 작업복을 집어 들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다. 왠지 작업복 그 이상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에.
첫날 현장 실사를 마친 두 사람은 공장 근처의 여관에 여장을 풀었다. 피곤했지만, 이 주임은 밤새 잠을 설쳤다. 공장에서 보았던 기계들의 잔상과 그 핏자국 같은 얼룩, 그리고 떨어졌던 작업복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었다. 야간에는 최소한의 인원만 남아 작업을 진행했고, 이 주임과 강 팀장도 번갈아가며 야간 근무를 섰다.
첫 야간 근무날, 이 주임이 혼자 공장 내부를 점검하던 중이었다.
텅 빈 생산 라인에서 갑자기 '끼익' 하는 쇠 긁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사용하지 않는 폐기 기계들이 모여 있는 창고 쪽에서 나는 것이었다. '누가 저기 들어가 있나?' 이 주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심스럽게 창고 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살짝 열자, 어두운 창고 안에서 '덜거덕, 덜거덕' 하는 기계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낡은 기계를 가동하고 있는 듯한 소리였다. 이 주임은 손전등을 비추며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기계는 멈춰 있었다.
"헛것을 들었나...."
이 주임은 고개를 저으며 돌아서려는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며칠 전 작업복이 떨어졌던 그 프레스 기계 옆, 먼지가 가득 쌓여있던 바닥에 방금 작업한 듯한 새로운 기름때와 미세한 쇠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방금 전까지 이곳에서 기계를 만진 흔적처럼.
이 주임의 등골이 오싹했다.
며칠 후, 강 팀장도 이상한 현상을 목격했다. 그는 야간 순찰 중 멈춰있는 생산 라인의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때였다. '쓱... 쓱...' 하는 소리와 함께 벨트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벨트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마치 누군가 제품을 올려놓은 것처럼 움직이다가 멈췄다.
강 팀장은 눈을 비볐다. '피곤한가? 환각을 봤나?' 그는 애써 자신을 납득시키려 했다.
하지만 현상은 점점 더 빈번해지고 구체화되었다.
밤마다 공장 곳곳에서 멈춰있던 기계들이 저절로 작동하거나, 공구들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전기 패널 근처에서는 '찌지 지직' 하는 고압 전류 소리와 함께 푸른 불꽃이 튀는 것을 목격한 직원도 있었다.
어떤 직원들은 어두운 공장 구석, 특히 높은 구조물 아래에서 희미하게 움직이는 그림자를 보거나,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섬뜩한 시선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마치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릴 것을 경고하는 듯이.
본부장은 직원들의 불만을 듣고도 여전히 미신이라 치부했다.
"다들 야근에 지쳐서 그런 겁니다. 괜한 소문 퍼뜨리지 마세요." 그는 윽박질렀다.
하지만 이 주임과 강 팀장은 더 이상 본부장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특히 강 팀장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는 굉음을 내며 움직이는 기계에 몸이 끼이거나, 아찔한 높이에서 추락하는 악몽을 꾸었다.
결국 강 팀장은 박 반장을 찾아갔다.
박 반장은 공장의 산증인 같은 존재로, 공장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박 반장님, 혹시 이 공장에... 이상한 소문 같은 거 없었습니까?"
강 팀장의 질문에 박 반장의 얼굴은 굳어졌지만, 이내 체념한 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
"소문이라... 소문이 아닐세. 이 공장, 죽어나간 사람만 벌써 서너 명이야. 자네도 알겠지만, 회사에서 다 쉬쉬하고 넘어갔지. 죄다 사고였어. 기계에 끼이고, 높은 데서 떨어지고, 전기 설비 만지다 감전되고..."
박 반장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엄청났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중에는 유능한 젊은 기술자도 있었지. 이름이... 곽 모였나? 곽정민 주임이라고. 아마 이 주임이랑 나이가 비슷했을 거야. 밤낮없이 기계만 붙잡고 살았어. 그러다 저 폐기 창고에 있던 낡은 프레스 기계에... 몸이 끼었어. 몸이 반으로 갈라져서... 비명도 못 지르고..."
박 반장의 말에 강 팀장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이 주임이 발견했던 그 핏자국 같은 얼룩, 그리고 작업복이 떨어졌던 그 프레스 기계.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그 젊은 친구, 죽는 순간에도 손에 뭘 쥐고 있었는지 아나? 새로운 기계 설계도면이었어. 어떻게 하면 이 낡아빠진 기계들을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만들까 밤낮없이 연구하던 친구였지. 죽는 순간까지도 그걸 놓지 못했어. 억울하게 죽은 원한이 오죽했겠나. 그 뒤로 밤만 되면 기계들이 저절로 움직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지. 그 영혼이 아직도 미완성된 자기 일을 하려 하는 건지... 아니면 뭔가 경고하려는 건지..."
몸이 좋지 않은 이 주임을 먼저 숙소로 보낸 강 팀장이 마지막으로 업무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사무실 밖에서 '끼아아아악! 덜커덩! 콰아아 앙!' 하는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공장 전체의 기계들이 미친 듯이 동시에 작동하기 시작하는 소리였다.
강 팀장은 창밖을 내다봤다. 멈춰있던 생산 라인의 기계들이 마치 누군가 조작하는 것처럼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컨베이어 벨트는 쉼 없이 돌아갔다. 그리고 그 사이로 희미한 사람 형체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다. 그 형체는 마치 어딘가에 끼인 듯 몸을 비틀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듯한 동작을 반복했다.
그때였다. 사무실 안으로 쇠 긁는 소리, 기름 냄새, 그리고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마치 환청처럼 울려 퍼졌다.
강 팀장은 공포에 질려 최대한 서둘러 사무실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공장을 거의 벗어나 입구에 다다르자 걸음을 늦추며 비로소 숨을 고르려는데
바로 뒤에서 어렴풋하게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고했어... 거기서 내려오지 마..."
"몸 조심해... 그 스위치... 만지지 마..."
강팀장은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숙소까지 쉼 없이 달렸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