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맞이 오피스 괴담 제10화
미지의 지하 3층
어느 늦은 밤, 정 대리는 막바지 야근을 마치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복도가 어둡게 느껴졌다.
낡은 형광등은 위태롭게 깜빡였고, 그의 발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딩-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섰다.
닫힘 버튼과 지하 2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부드럽게 하강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하 1층을 지나 2층에 도달하기 직전, '삐빅-' 하는 날카로운 전자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덜컥거렸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층수 표시등은 엉뚱하게도 'B3'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하 3층. 정 대리는 당황했다. 그는 지하 3층 버튼을 누르지도 않았고, 그 층은 평소 출입이 통제된 곳이었다.
'덜컥!'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어둡고 텅 빈 복도였다. 녹슨 파이프와 거미줄, 그리고 습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스산한 냉기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스며들어 정 대리의 팔에 소름을 돋게 했다.
복도 저편,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한 희미한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본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닫힘' 버튼을 반복해서 눌렀다. 문이 닫히자마자 엘리베이터는 다시 상층으로 올라가는 듯했고, 정 대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빌어먹을, 고장이 난 건가?' 그는 애써 담담하게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은 멈출 줄 몰랐다.
미로가 된 주차장
그 후로 정 대리는 밤늦게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비슷한 경험을 했다.
엘리베이터는 종종 지하 3층에서 저절로 멈췄고, 문이 열릴 때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끈질기게 지켜보는 듯한 섬뜩한 시선이 느껴졌다. 때로는 희미하게 쇠 긁는 소리나, 어딘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는 점차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홀로 남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이런 기이한 경험은 정 대리만이 겪는 것이 아니었다.
김 과장 역시 회식 후 늦은 밤 차를 빼러 지하 주차장에 갔다가 섬뜩한 일을 겪었다.
지하 2층에 주차된 자신의 차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낡은 조명 아래 흐릿하게 보이는 주차장 표지판들은 엉망으로 뒤엉켜 있었고, 마치 끝없이 이어진 미로처럼 느껴졌다. 그는 한참을 헤매다 겨우 차를 찾았을 때는 이미 1시간이 넘게 지나 있었다.
마치 시간 자체가 왜곡된 공간에 갇혔던 것처럼.
그 후 김 과장은 지하 주차장에서 홀로 있을 때면, 희미하게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고 주장했다.
점차 직원들 사이에서 밤늦게 지하 주차장에서 길을 잃거나, 엘리베이터가 알 수 없는 층으로 향하는 괴담이 퍼지기 시작했다. 어떤 직원들은 지하 주차장 구석에서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울음소리는 마치 억울함에 사무친 한처럼 들렸다고.
가장 섬뜩한 것은,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자신 외에 아무도 없는데도 거울에 입김이 번지거나, 인원 초과로 문이 닫히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는 것이다.
타인의 자리
이런 기이한 일들이 반복되자, 정 대리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다음 주면 해외 주재원 파견이 예정돼 있던 터라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기도 했다.
이번 해외 주재원에 선발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왔던가.
최종 면접에 학교 선배가 면접관으로 들어온 건 천운이었다 해도 선발자 발표를 앞두고 장인어른의 도움은 결정적이었다. 선발된 주재원 명단에 정 대리가 들어있지 않자, 사외 이사를 맡고 있던 장인어른이 조용히 개입해서 감쪽같이 신규 주재원 명단을 바꿔버린 것이다.
아이들을 외국인 학교에 꼭 보내야 한다던 아내의 성화에 정 대리도 장인어른도 이겨낼 재간이 없었기도 했다. 어쨌든 여러 모로 부족했던 정 대리였지만 그동안 본인이 잘 살아온 증거라며 인맥들의 도움을 합리화해 왔다.
원래 나가기로 했다가 영문도 모른 채 주재원 자격을 잃게 된 게 누구인지는 관심 밖이었다. 오로지 앞으로 올라갈 일만 남은 커리어를 생각하니 불안감 대신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렇게 자정을 막 넘긴 시간.
그는 지친 몸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딩-동'하고 문은 열렸지만, 엘리베이터 안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전등이 꺼져 있었다. 그는 휴대폰 조명을 켜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층수 버튼을 눌렀지만, 엘리베이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삑-.'
'아무도 없는데 만원이라니... 또 고장인가?'
신경질적으로 닫힘 버튼을 누르고 있자니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느 때와 달리 내려가는 속도가 너무나 느리게 느껴졌다.
이미 지하 2층에 도착했어야 하는데도 지하 1층 표시가 바뀌지 않고 있었다.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익숙한 듯 발을 내디디려는 순간,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문밖에 펼쳐졌다.
어둠 속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폐쇄된 통로. 녹슨 철문들과 습한 공기, 그리고 섬뜩할 정도로 낮은 온도가 그를 감쌌다.
그때였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 속에 비친 그의 모습 뒤로 섬뜩하게 웃고 있는 핏기 없는 얼굴의 여성이 나타났다. 그녀의 눈은 텅 비어 있었고, 입꼬리는 기괴하게 올라가 있었다. 정 대리가 공포에 질려 몸을 돌리려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그의 귀 가까이 다가와 차갑게 속삭였다.
"왜 내려왔어? 올라가는 거 좋아하잖아?"
동시에 지하 3층 복도 저편에서 낮은 함성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내 자리! 내 기회! 내 자리! 내 기회..."
억울함에 사무친 듯한 수많은 목소리들이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복도 끝 어둠 속에서 희미한 그림자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마치 그를 비난하며 다가오는 듯했다.
빼앗긴 자의 저주
정 대리는 공포에 질려 필사적으로 엘리베이터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두운 지하 3층 복도를 내달렸다.
마치 미로처럼 이어지는 통로를 헤매다 비상계단을 발견하고는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간신히 1층 로비에 도달했을 때, 그는 바닥에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경비원 최 씨가 그에게 다가왔다. "괜찮아요? 얼굴이 왜 이래요?"
정 대리는 횡설수설하며 지하 3층에서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경비원 최 씨가 정 대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이 빌딩에는 지하 3층이 없어요."
숨을 거칠게 몰아 쉬던 정 대리의 몸이 순간 굳어버린 듯 멈춰 버렸다.
"설령 지하 3층에 갔었다 해도 1층과 연결된 비상계단은 존재하지 않는다구요"
정 대리를 내려다보는 경비원 최 씨의 입가에 웃음이 번져갔다.
바닥에 쓰러져 숨을 고르던 정 대리의 두 눈이 찢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커지고 있었다.
정 대리는 늘 성공의 꼭대기에 서 있다고 믿었다. 다른 이들의 기회를 짓밟고, 자신의 인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을 휘둘러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 승진도, 해외 파견도, 모두 그의 계산된 술수 아래 놓인 판이였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비상한 능력에 감탄하거나, 혹은 두려워하며 그를 우러러보았다.
'흥진비래(興盡悲來)'라 했듯, 번영이 다하면 슬픔이 찾아오는 법.
그의 탐욕이 불러온 것은 한때의 영광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파멸이었다.
정 대리가 가기로 했던 해외 주재원 자리에 박 대리가 대신 가게 됐다.
정 대리는 무슨 영문인지 보름 후, 회사를 그만두며 박 대리를 찾아가 알 수 없는 말로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 빌딩의 지하 주차장과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그곳에 존재한다.
올바른 방법으로 목표 지점에 오르지 않은 자, 남의 것을 빼앗아 자리를 차지하려는 자.
이들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게 하는 진실의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그곳에 존재한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