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맞이 오피스 괴담 제11화
여름의 초입, 사무실의 공기는 가동을 멈춘 에어컨처럼 무겁고 불쾌하게 정체되어 있었다.
모니터의 푸른빛만 이 유령처럼 떠다니는 오후, 단 하나의 이메일이 그 정적을 깨뜨렸다.
발신인은 인사팀, 제목은 단 두 글자였다.
[부고]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Q였다.
진급 누락, 도둑맞은 실적, 그림자처럼 따라붙던 악의적인 소문들.
그 모든 것을 견디다 못해 부서져 내렸던 Q.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는 현대의 낙인 속에서 투병하다 결국 병가를 냈던 그녀의 마지막 소식이었다.
그녀의 이름이 모니터에 떠오른 순간, 사무실은 보이지 않는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최근 몇 달간 연이어 발생했던 기이한 사고와 우연같지 않은 사건들이 Q의 부고를 중심으로 끔찍하고 거대한 퍼즐을 완성하고 있었다.
"갈 사람이 있긴 한가 몰라."
창밖을 등진 채, 장 부장이 팔짱을 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조롱과 알 수 없는 공포가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그는 이 모든 불행이 Q의 원혼이 빚어낸 저주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게 왜 Q 씨 탓입니까. 망상도 정도가 있으시죠."
보다 못한 오 차장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의 눈빛은 정의감으로 불타는 듯했지만, 자세히 보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방관자로서의 죄책감이 그의 목소리에 쇳소리를 더했다.
"척 보면 몰라? 죄다 Q한테 못되게 굴었던 인간들이잖아! 서 차장은 사람들 없는 데서 Q를 쥐 잡듯 했고, 안 대리는 Q가 유부남이랑 놀아났다는 소문을 퍼뜨렸지. 그리고 정 대리, 이 사원..."
장 부장은 취객처럼 삿대질을 이어가다, 문득 입을 다물었다.
성역과도 같던 부문장의 집무실 문이 소리 없이 열렸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재단된 검은 상복을 입은 부문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은 잘 닦인 대리석처럼 아무런 감정도 비추지 않았다. 슬픔도, 분노도, 심지어 애도조차 읽을 수 없는 완벽한 무표정. 그는 사무실을 한번 쓱 훑어본 뒤, 유령처럼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의 등 뒤로 장 부장이 들릴 듯 말 듯 속삭였다.
"... 저 인간이 제일 악질이었지."
부문장이 사라진 사무실은 진공 상태에 빠졌다. 누구도 선뜻 장례식장으로 향하지 못했다.
Q의 죽음은 거대한 거울이 되어, 그들 각자의 비겁함과 잔인함, 혹은 이기적인 무관심을 남김없이 비춰 보이고 있었다. 그 추악한 민낯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 자는 없었다.
침묵을 깬 것은 오 차장이었다. 그는 속죄라도 하듯,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의 뒤를, Q에게 작은 미안함이라도 가졌던 몇몇 사원들이 마지못해 따랐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장 부장은 허공을 향해 뇌까렸다.
"가서 뭘 어쩌겠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대?"
그의 목소리는 저주라기보다, 겁에 질린 아이의 기도처럼 공허하게 사무실을 맴돌았다.
장례식장은 삶과 죽음의 냄새가 역겹게 뒤섞여 있었다.
시들어가는 국화의 분내, 켜켜이 쌓인 음식의 기름 냄새, 그리고 억눌린 슬픔이 발효되는 쿰쿰한 체취까지.
오 차장과 동료들은 익숙한 불쾌감에 미간을 찌푸리며 조의금을 내밀었다.
그러나 분향소에 들어선 순간, 그들은 얼어붙었다.
예상했던 유족들의 오열도, 부산함도 없었다. 그저 절대적인 정적만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 상주석에 한 여인이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마치 대리석으로 깎아낸 조각상처럼 미동도 없이.
"... Q?"
누군가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이름.
상주는 Q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치 거울에 비춘 듯 똑 닮아 있었다.
생전의 Q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자신과 꼭 닮았다는 그녀의 어머니였다.
하지만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불안과 우울에 잠식되어 늘 그늘져 있던 Q의 얼굴과 달리, 여인의 얼굴은 슬픔 속에서도 칼날 같은 단단함과 서늘한 지성이 번뜩였다. 그 눈빛은 조문객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마치 스캔하듯 훑었다. 그 시선은 단순한 응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평가였고, 분석이었으며, 기억을 위한 각인이었다.
동료들은 저마다 경악과 혼란 속에서 수군거렸다.
'쌍둥이였나?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그들의 혼란을 꿰뚫기라도 한 듯, 상주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제 딸아이, Q의 엄마입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소리는 슬픔에 젖어 있었지만,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강철 심을 박아 넣은 듯 낮고 단단한 음성이었다. 오 차장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시선이 유독 자신의 얼굴에 오래, 그리고 깊게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 시선 앞에서 그는 벌거벗겨진 기분이었다. 그의 비겁했던 침묵과 방관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 부문장이 수행원처럼 몇몇 팀장을 대동하고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그의 등장만으로도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는 듯했다. 무리의 중심에 선 그는 특유의 오만함과 권위로 주변을 압도했다. 그는 분향소로 다가와 향을 피우고, 영정 사진을 향해 잠시 묵념했다. 모든 것이 잘 짜인 연극의 한 장면 같았다.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습니까. 회사의 입장에서도 정말 안타깝고 재능 있는 인재를 잃어...”
부문장의 위로는 유창했지만, 그 속에 진심은 단 한 방울도 섞여 있지 않았다.
Q의 어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부문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희미하게, 그러나 누구라도 들을 수 있을 만큼 명확한 목소리로 말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문장님. 우리 아이가... 살아생전에 부문장님 이야기를 참 많이 했습니다.”
부문장의 얼굴에 순간 의아함이 스쳤다. Q와 그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말을 이었다.
그 목소리에는 실낱같은 떨림이 묻어났지만, 그것은 슬픔이라기보다는 칼날 끝의 미세한 진동에 가까웠다.
“자신을... 결코 잊지 않으실 거라고. 그렇게 말하더군요.”
Q의 어머니는 평범한 비탄에 잠긴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녀의 슬픔은 눈물로 모두 증발하고, 그 자리에 응축된 무언가가 단단하게 굳어버린 듯했다.
부문장은 서둘러 장례식장을 떠났다. 그의 뒷모습은 어쩐지 들어설 때의 당당함이 사라진 채, 무언가에 쫓기는 듯 위축되어 있었다.
Q의 어머니는 마치 외로운 성채처럼, 홀로 거대한 전쟁을 준비하는 지휘관처럼 보였다.
장례식장의 무거운 공기 속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어느새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