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마스크 뒤에 숨겨진 명예퇴직

시간의 다방 : 그레이네상스, 다시 피어나는 꽃

by 공감디렉터J


“승객 여러분, 마스크 착용을 부탁드립니다.”

2020년 2월, 서울 지하철 2호선. 박정훈(59세) 씨는 KF94 마스크를 고쳐 썼다. 숨이 가빴다.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었다. 품 안주머니에 찔러 넣은 '희망퇴직 신청서’가 심장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부장, 회사가 살아야 자네도 사는 거야. 위로금 챙겨줄 때 나가.”
30년 근속의 대가가 고작 A4 용지 한 장이었다. 팬데믹은 핑계였고, 회사는 늙은 인력을 털어내고 싶어 했다. 정훈은 죄인처럼 짐을 쌌다. 가족들에게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매일 아침 양복을 입고 나와 공원 벤치를 전전했다.

6년이 지난 2026년. 정훈은 여전히 그 트라우마 속에 산다. 재취업은 실패했고, 아내 눈치를 보며 베란다에서 숨죽여 담배를 피우는 신세.
“여보, 음식물 쓰레기 좀 버리고 와.”
아내의 타박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간 골목길. 폐업한 약국 자리에 기묘한 네온사인이 번쩍였다.

[시간의 다방]


문을 열자 소독약 냄새 대신 향긋한 헤이즐넛 향이 났다.
카운터엔 방호복을 입은 청년이 앉아 있었다. 고글을 벗은 얼굴은 5년 전, 정훈에게 퇴직 서류를 내밀며 울먹이던 인사팀 김 대리였다.

“부장님? 아니, 이제 그냥 아저씨인가요?”

김 대리는 묘하게 비꼬는 말투였다. 정훈은 울컥했다.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

“저도 그때 잘렸거든요. 부장님 자르고 나서 구조조정 칼바람이 저한테까지 오더라고요. 억울하죠? 우리 둘 다.”

김 대리가 쟁반을 툭 내려놓았다. 백신 주사기와 달달한 믹스커피.

“자, 억울하면 다시 세팅합시다.”

“백신을 맞으면, 2019년 말로 보내드립니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이죠. 주식? 부동산? 그런 거 말고, 부장님은 '마스크’를 사재기하세요. 퇴직금 미리 당겨서라도 마스크 공장을 인수하세요. 그럼 2020년 봄, 부장님은 '마스크 왕’이 되어 돈방석에 앉습니다. 회사? 콧방귀 뀌며 제 발로 걸어 나오세요.”

“격리 해제를 하면... 그냥 지금처럼 사세요. 음식물 쓰레기나 버리면서, ‘그때 내가 참았어야 했는데’ 후회하면서요.”

“아무것도 안 하면... 내일 아침 경비원 면접 보러 가셔야죠. 거기도 경쟁률 50대 1이랍니다.”

정훈은 주사기를 노려보았다.
마스크 왕.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그 굴욕적인 퇴직 면담 날, 사장 면상에 사표를 던지며 "나 마스크 재벌이야!"라고 외치는 상상.
지긋지긋한 가난, 아내의 잔소리, 축 처진 어깨. 이 모든 걸 한 방에 날릴 기회였다.

‘교훈? 개나 주라지. 내가 살고 봐야겠다.’

“야, 김 대리.”

정훈은 주저 없이 주사기를 집어 들었다.

“나 돌아간다. 가서 마스크 공장 다 쓸어버릴 거야.”

“오, 역시 부장님. 결단력 하나는 인정합니다.”

정훈이 팔을 걷어붙이고 주사기를 꽂았다. 따끔함과 함께 세상이 빙글 돌았다.


눈을 뜨니 2019년 12월.
정훈은 미친 사람처럼 뛰었다. 퇴직금 가불, 적금 해지, 대출 풀가동.
“당신 미쳤어? 전 재산을 어디다 쓰는 거야!”
아내의 비명에도 정훈은 묵묵히 경기도 외곽의 망해가는 마스크 공장을 인수했다. 그리고 원단 창고를 꽉꽉 채웠다.

두 달 뒤, 2020년 2월.
뉴스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장당 500원 하던 마스크가 3,000원, 4,000원을 호가했다. 공장 앞에는 현금 다발을 든 도매상들이 트럭을 대고 줄을 섰다.

“박 사장님! 물건만 주시면 부르는 게 값입니다!”

정훈은 공장 2층 사무실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최고급 시가를 피워 물었다.
통장 잔고의 숫자가 매초마다 올라갔다.
그때 전화가 왔다. 전 직장 사장이었다.
“아이고, 박 대표님. 우리 직원들 쓸 마스크가 없어서... 좀 도와주십사 하고...”
“사장님, 줄 서세요. 선착순입니다.”
전화를 끊는 정훈의 손맛이 짜릿했다.


6년 뒤, 2026년 현재.
정훈은 한강 뷰가 보이는 펜트하우스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다.
아내는 옆에서 백화점 카탈로그를 보며 콧노래를 부른다.
“여보, 이번에 차 바꿀까?”
“그래, 벤츠로 하나 뽑아.”

물론 마음 한구석엔 씁쓸함도 있다. 국가적 재난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는 죄책감? 조금은 있다.
하지만 정훈은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5년 전의 패배감에 찌든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자신감 넘치고 기름진 얼굴이 있었다.

‘가난한 정의보다 부유한 악당이 낫다더니.’

정훈은 피식 웃으며 빈 와인잔을 채웠다.
교훈적이지 않으면 어떤가. 나는 지금 내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데.
그는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이제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작가 노트]

네, 맞습니다. 제가 주인공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써 봤습니다. 가끔은 점잖거나 고급스럽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