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순간
해마다 이맘때면 서랍에 묵혀두었던 편지지를 꺼내 든다. 여민 옷 사이를 기어이 파고드는 한기와 연말의 분위기로 한껏 고조되기 시작하는 거리의 풍경, 어느새 남은 잎을 모두 떨구고 앙상하게 서 있는 나무들이 왠지 모를 공허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공허는 예외 없이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몰고 온다. 그리워서 새삼 지금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다시 그리워서 지난날 좋았던 인연들을 하나둘 떠올리고, 그러다 보면 모두들 잘 지내는지, 무연히 안부를 전하고 싶어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