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사람들은 말한다.
“나만의 기준을 가져야 한다.”
“남 눈치 보지 말고 살아야 한다.”
맞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 말들은
막연한 방향일 뿐, 오히려 더 불안해진다.
그래서 그렇게 마음먹은 사람은
곧 또 다른 결심을 하게 된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으려 할수록
잠시가 지나면 다시 불안해진다.
결정 앞에서 머뭇거리고,
선택 뒤에는 자꾸 확인을 붙인다.
이게 맞는지,
지금 괜찮은 건지,
혹시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이상한 점이 있다.
사람은
남의 기준에는 비교적 잘 적응한다는 점이다.
회사 기준,
관계의 규칙,
사회가 정해놓은 속도.
그 안에서는
힘들어도 방향이 분명하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 순간
오히려 방향이 흐려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기준을
처음부터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기준을 만드는 법을 배우지 않고 자란다.
어릴 때 필요했던 건
기준이 아니라 적응이었다.
눈치,
반응,
맞추는 감각.
살아남기 위해 먼저 배운 건
‘나를 세우는 법’이 아니라
‘나를 숨기는 법’이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으려 할 때
두려워진다.
그 기준이 달라서가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마음을
가장 마지막에 묻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기 기준을 세운다는 일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 미뤄두었던 질문을
다시 꺼내는 일에 가깝다.
“나는 지금 무엇이 불편한지.”
“나는 지금 무엇을 피하고 있는지.”
“나는 언제부터 이걸 당연하게 넘기기 시작했는지.”
이 질문들은
즉각적인 답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이 질문을 자주 피한다.
하지만 기준은
답에서 생기지 않는다.
머무름에서 생긴다.
자기 안에서
조금 불편한 감각을
서둘러 해석하지 않고,
급히 판단하지 않고
잠시 그대로 두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기준은
천천히 윤곽을 드러낸다.
사람은
선택을 할 때
자기 기준부터 보지 않는다.
먼저 상황을 보고,
사람을 보고,
괜찮아 보이는 쪽을 고른다.
그래서 많은 선택이 끝난 뒤에야
이상한 감각이 남는다.
말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편하지 않거나,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운 느낌.
그 감각은
선택이 틀렸다는 증거가 아니라,
아직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신호에 가깝다.
사람은
그 신호를 따라가면
조금씩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크게 깨닫지 않아도 된다.
다만
다음 선택 앞에서
나는 지금
나의 어떤 기준을 먼저 보고 있는지,
아니면
여전히 바깥을 먼저 보고 있는지만
조용히 알아차리면 된다.
다음 화에서는
이 기준의 부재가
왜 사람을 끊임없이
비교로 끌고 가는지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