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때문에 죽고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11화

by 베레쉬트

사람은
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감정은
설명되기 전에
이미 몸에 도착한다.



그래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내 마음이 그래.”
“그렇게 느껴졌어.”
“마음이 먼저 반응했어.”


이 말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검증이 없다.





감정은
증명하지 않아도
바로 받아들여진다.


왜냐하면


감정은
생각보다
오래된 언어이기 때문이다.



말보다 먼저,
논리보다 먼저,
선택보다 먼저.



위험한지,
안전한지,
다가가도 되는지.



이 판단을
가장 빨리 해온 것은
항상 감정이었다.



그래서
감정은
사람을 이끌었다.



문제는


그 역할이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감정이 틀릴 수 없었다.



잘못 느끼면
다쳤고,


늦게 반응하면
죽었다.



그래서 감정은
‘신호’ 오는 것인데


‘명령’처럼 작동했다.


그리고 그 습관은
지금도 남아 있다.




사람은
감정을 느끼는 순간


이미
결론을 결정한다.



불안하면
위험하다고 믿고,


서운하면
상대가 잘못했다고 믿고,


두려우면
피해야 한다고 믿는다.



감정이

먼저 확정해 버리고


생각은
그다음에 온다.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논리가 동원된다.



그래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이유가 있어서 그래.”
“가만 보면 근거가 있어.”
“생각해 보면 당연하지.”




감정은

말로나오기 전에
몸으로 이미 해석을 마친다.


느낌으로 결정하고,
이유는 나중에 해석한다.






사람이
감정을 진실로 믿는 이유는


그 감정이
자주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과거에는.




문제는
환경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지금의 위험은
맹수도 아니고,
굶주림도 아니다.



대부분은


관계,

평가,

비교,

상실이다.




그런데 감정은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과거의 위험 신호로
현재를 해석한다.


그래서
작은 무시는
버림처럼 느껴지고,


잠깐의 불안은
붕괴처럼 느껴진다.




감정은
과장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람은
그 과장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감정이 거짓이라는 말이 아니다.


감정은
항상 진짜다.


다만
감정이 말하는 이야기가
항상 사실은 아니다.






아픈 신호가

치명적인 병을 뜻하지 않듯,


불안한 감정이

위험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이 구분을
잘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감정이 오면
감정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사람을 흔드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감정을 사실로 믿는 순간이다.



감정을
보는 대신



감정이 자신이 된다.




감정을 보는 순간,


나는 감정에서 벗어난다.






















다음 화에서는


이 감정들이
어떻게 기억과 결합해
사람의 반응을 굳히는지,


그리고 왜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
늘 같은 감정을 느끼는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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