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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지 Mar 30. 2024

글쎄 우리는 어디로 가려는 걸까

낮 열두 시

두 사람의 온도가 라디오를 타고 온다

자동차 뒷좌석에서 하얀 인형을 안고 졸던 아이는

두 시쯤 일어나 묻는다


어디쯤 왔어

글쎄 어디쯤 왔을까

언제 도착해

글쎄 우리는 어디로 가려는 걸까


창밖엔 구불거리는 황토색 흙길들

드문드문 보이는 산이 첩첩 달려든다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며

그제야 진짜 잠에서 깨는 아이


창문을 내리고 바람을 맞으면

차 안의 공기가 떠나간다

바람에 실어 멀미 기운을 날려 보내려 하다 보면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노래도 끝나고

이미 차는 목적지에 도착한 지 오래


기억은 어디에서도 오려고 하지 않는다

등 돌린 그림자들이 떠나려고 한다

어깨를 툭 쳤다가 돌아본 그림자를 보고 깜짝 놀라 뒷걸음친다

당연한데도 얼굴이 없어서


가만히 있어도 발밑은 자꾸 일렁거린다

마그마 끓듯 일렁이는 땅 위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애초부터 달리기에 적합한 몸이 아니었다

휘파람이 들린다


너는 누구의 소리니

질문은 던지지 못하고

발밑에서 올라오는 땅의 요동으로 감각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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