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멜론 슈가를 읽고

by 이솔지

워터멜론 슈가*에 멜빵 청바지 차림으로 빨간 봇짐 하나 어깨에 메고 다녀왔다 다녀오는 길에 회색 쥐를 만났다 허리를 굽히고 인사하며 보니 검은 털 사이로 새치 같은 흰 털이 자랐을 뿐 회색 쥐였던 건 아니었다 쥐는 호랑이들을 피해 왔는데 호랑이들이 모두 죽어 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돌아가지도 못한다고도 했다 고향이 사라진 거라고 했다 공포에 떠는 밤에도 고향의 별은 돌고 돌았는데 이제는 평화에 들뜬 밤만 남아 밤이 밤이 되지 않아 잠들지 못할 거라고 했다 쥐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 짐을 풀다 보니 재채기가 터져 나왔다 가려운 콧속에서 빠져나온 하얀 털이 한들한들 손등에 내려앉았다 빨간 봇짐 안에 눈동자처럼 까만 새끼 쥐가 있었는데 발견한 순간부터 털이 세기 시작했다 숨이 붙어 있는지 알아보려고 유독 반질거리는 새끼 쥐의 배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워터멜론 슈가: 최승자 시인이 소개하고 번역한 소설의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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