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변화도 나를 사랑하는데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빠, 그럼 나만 아빠랑 놀고 싶어."
평일에는 패드 사용을 하지 말아 보자는 내 의견에 둘째가 꺼낸 제안이었다.
형제자매가 많은 집에서 나 혼자 온전히 부모님을 차지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대단한 특권이었다.
나는 흔쾌히 OK 했다.
학교, 학원을 다녀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숙제하고 씻으면 저녁 8시 정도. 우리 집 첫째와 셋째는 좋아하는 야구를 보고, 둘째는 아빠와의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첫날, 둘째는 집에 오자마자 힘들다고 투정을 한다.
금단현상인가?
가방 던지고 패드부터 찾던 아이가 패드를 볼 수 없다는 실망감 때문인지 다른 핑계를 대며 짜증을 낸다.
이럴 땐 좋은 방법은 조용히 가서 안아주는 것이다.
"2솔아, 오늘 학교에서 많이 힘들었어? 애썼다. 우리 딸."
"아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도와줘."
예상치 못했던 딸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난 왜 이 말이 그렇게 슬펐는지 모르겠다.
평범한 일상이었고, 평범한 대화였지만 어둠 속에서 혼자 외롭게 있는 아이가 도와달라고 외치는 소리 같았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의지하던 술, 담배, 게임, 핸드폰, SNS... 나에게 도피처가 되어준 것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라졌을 때 그 마음은 어쩔 줄 모르는 '불안'과 '두려움'일 것이다.
아이에게는 그 감정이 더 심할 것이다.
아이가 혼자 이런 길을 가도록 방치했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몰려왔다.
"아빠가 미안해. 곧 괜찮아질 거야."
겨우 아이를 진정시키고, 저녁 먹고, 치우고, 아이와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아빠, 이제부터는 1시간 동안 나하고만 놀아야 해."
"응. 알았어. 그런데 무슨 놀이할까?"
"글쎄... ASMR 놀이할까?"
"그게 뭐야?"
"내가 어떤 소리를 내면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맞추는 거야."
유튜브에서 보던 ASMR 소리들이 2솔이에게는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듯했다. 우리는 눈을 감고, 서로가 내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역시 2솔이의 승리였다.
어쩌면 2솔이는 평소에도 나에게 이런 신호들을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그런 소리들... 온전히 집중해야 알 수 있는 둘째의 마음의 소리.
첫 번째 놀이가 끝나고, 우리는 두 번째 놀이를 하였다. 일명 환자놀이... 아빠가 환자가 되고, 2솔이는 의사 선생님. 이상한 환자와 엉뚱한 의사 선생님 때문에 우리는 깔깔깔 웃었다.
아래층에서 놀던 3솔이가 방문을 빼꼼히 열며 말한다.
"나도 같이 놀면 안 돼?"
"미안. 지금 시간은 누나랑만 노는 시간이야."
미리 말해놓아서 쉽게 포기하고 가는 3솔이.
우리는 역할을 바꿔서 다시 놀이를 했다. 2솔이는 환자 연기를 했다.
할머니, 아줌마, 임신한 여자 등등 다양한 환자가 등장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 2솔이가 연기를 잘한다. (아빠는 팔불출?)
진지하게 내가 물었다.
"너 혹시 연기할 생각 없니?"
2솔이의 변화무쌍한 환자 연기에 난 오랜만에 배를 잡고 웃었다.
아쉽지만 약속된 시간이 다 되어서 우리의 놀이는 끝이 났다.
2솔이의 표정에서 만족함이 느껴졌고, 1솔이와 3솔이는 내일은 나하고 놀아달라며 순위표를 뽑았다.
2솔이는 가장 좋아하는 외동딸 역할에서 예민해지는 삼 남매의 둘째로 돌아왔다.
"아빠,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 다음에 또 놀자."
아이의 기쁨이 나에겐 칭찬이 되고, 미안함이 되기도 한다.
변화는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뭘 해야 한다는 의무감만 조금 내려놓으면,
뭘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급함만 조금 내려놓으면,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아이들 덕분에 오늘도 나를 키우고 있다.
나의 변화도 나를 사랑하는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육아(育兒)는 역시 육아(育我)인가 보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