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 갔을까?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오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네.
아이는 더 보챈다.
오딨어? 빨리 찾아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빨간색, 초록색 사이에서
검은색을 찾는다.
까치발을 하고 저 멀리 있는 것
손 뻗어 보지만
아슬아슬하게 닿지를 않는다.
드디어 찾았다.
오동통 말랑말랑
아이 하나 나 하나
입에 넣고 오물오물
입속에서 오도독오도독
오~ 입속에 터지는
작은 알맹이들
새콤달콤 맛난다.
찾느라 땀난다.
오디로 갔을까?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오늘도 오디 찾아
하늘만 본다.
오디 열매가 제법 익었다. 하늘의 푸른색과 초록색 잎, 보라색의 오디가 잘 어울린다. 난 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서울에서 보내서 '오디'는 그저 책에서는 나오는 '뽕나무 열매'였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시골에 살게 되면서, 오디 열매를 찾아 따 먹는 일이 5월과 6월의 소중한 일과가 되었다. 오디 과즙이 손과 입술을 물들여 마치 피를 흘린 것처럼 변장하는 재미도 있고, 누가 더 많이 따나 하는 소소한 경쟁도 있다. 한 번에 얼마나 많이 입에 넣고 먹을 수 있는지 시합하는 것도 아이들에겐 큰 놀이가 된다.
막내 3솔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마당에는 큰 뽕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하원할 때면 3솔이는 어김없이 오디 열매를 따 달라며 조른다. 작은 그릇 하나가 가득 찰 때까지 따야 비로소 나의 노동이 끝난다. 흐르는 물에 오디를 한 번 씻어주면 준비 완료다. 오디를 유독 좋아하는 3솔이는 "오디는 한꺼번에 많이 먹어야 맛있어!"라며 작은 두 손에 오디를 한가득 담는다. 그리고 작은 입속에 다 털어 넣는다.
입 밖으로 보랏빛 과즙이 흘러나와도 3솔이는 웃으면서 우적우적 맛있게 먹는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시골에 사는 아이가 누릴 수 있는 행복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넌 피가 맑아지겠다.
넌 간이 좋아지겠다.
넌 눈이 밝아지겠다.
넌 천천히 늙겠다.
넌 면역력도 좋아지겠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것들이 다 나에게도 필요한 것들이었다. 부모들은 맛있고 좋은 거 생기면 자식부터 챙긴다. 내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며 하나라도 더 넣어준다. 살림하다 보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예쁜 거, 좋은 거, 건강한 거 다 자식 입에 넣어준다. 그리고 내 입에는 못생긴 거, 탄 거, 남은 거를 털어 넣는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이고, 알뜰한 살림 노하우라 생각했다.
주부들의 자존감을 위해서라도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생각해 보면 부모가 건강해야 자식들도 돌보고, 오래 살아야 자식들 독립까지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다. 부모가 자의 몸을 챙기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부모의 역할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오디는 함께 나눠 먹어야겠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