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녀 가정의 흔한 일상
“5분 남았다. 양치하고 차 타세요.”
내가 평일 아침이면 AI처럼 내뱉는 말이다. 아이들 학교는 걸어갈 수 없는 거리에 떨어져 있다. 학교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아침이면 알람시계처럼 5분 단위로 안내 방송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 반응은 제각각이다.
첫째는 ‘여유만만형’이다. 아무리 재촉해도 자기만의 속도로 움직인다. 좀 과장하면 영화 주토피아에 나오는 플래시(나무늘보)처럼 움직인다. 사춘기 초기라 대답도 잘 안 한다.
둘째는 ‘조급형’이다. 첫째와는 반대로 아침이면 불안하다. 늦을 까봐 불안해서 나보다 더 재촉한다. “아빠 지금 차에 타야 해. 늦으면 어떡해.” 인사이드아웃2의 불안이 같다.
셋째는 ‘왜?’유형이다. 7살이 된 후로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원인과 결과가 궁금해졌다. 형, 누나와 비교하기도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이 분명해졌으며,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궁금증이 많아졌다. “형도 아직 양치 안 했잖아. 아빠는 했어?”, “늦으면 어떻게 돼?”
이렇게 삼인삼색의 삼남매를 태우고 학교 셔틀버스 정류장까지 무사히 가는 것이 나의 평일 아침 첫 임무이다. 오늘 아침도 서둘러 준비하는데 첫째와 셋째가 몸놀이를 하고 있다. 아빠와 엄마의 서두르라는 말은 옆집 개가 짖는 소리와 같은 레벨로 취급받는다. 결국 짧고 굵은 기합소리 한 번 내지르자 정신이 돌아온다.
그런데 내 마음에는 또 죄책감이란 놈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첫째는 다시 조용해졌다. 셋째는 아무 상관없이 조잘거린다. 나는 성급하게 차를 운전한다. 마음속에서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라고 속삭인다. 깊은 심호흡 한번. ‘괜히 아침부터 소리질렀나?’,‘아냐, 너도 지칠 만했잖아.’ 두 마음이 아침부터 또 제대로 붙었다. 어느 쪽이든 한쪽 편을 들면 다른 쪽에서 곧장 반박이 들어온다. 그냥 두 마음 모두 인정해 준다.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니, 차도 순한 양이 되었다.
버스 정류장 도착. 둘째는 “다녀 오겠습니다.”하고 내리고 첫째는 꿈쩍도 안 한다. 학교버스가 도착해야 내릴 기세다. 조용히 기다린다. 매번 학교 버스가 도착해야 헐레벌떡 서두르는 모습이 날 닮아서 더 싫었다. 나도 어렸을 적 빨리빨리 안 한다고 많이 혼났다. 아마도 1솔이의 모습을 보면 부모님께 혼났던 어릴 적 나의 모습이 떠올라 더 싫었던 것 같다.
참다 못해 한 마디 했다. “어서 내려. 3솔이 데려다 줘야 해.” “잠깐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또 속에서 열불이 난다. 집에서 한 소리 들은 것에 대한 사춘기 소년의 소심한 복수다.
잠시 후 천천히 움직인다. 안전밸트를 풀고, 문을 열고, 오른발을 밖으로 내놓고, 가방을 들고, 엉덩이를 한 번 튕기고, 왼발을 밖으로 내놓는다. 나에게는 스로우모션처럼 장면이 천천히 움직인다. 플래시(나무늘보)가 또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한숨은 어떤 상황에서는 말없이 상대방을 비난하는 무기로 사용된다.)
다 내려서는 아무 말 없이 문이 “쾅!” 닫힌다.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인사까지 하던 아들이 오늘은 나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것 같았다. 내 속은 열불과 후회와 미안함이 섞여서 휘몰아친다.
내 속은 왜 이렇게 열불이 날까?
아마도 어린 시절 나의 성격 때문에 수없이 혼났던 상처받은 아이 때문일 것이다. 내가 ‘나’이어서 혼났던 순간들. 작은 실수에 존재를 부정당했던 순간들. 그 상처받은 아이가 거울 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진다.
난 아직도 그 상처받은 아이를 위로해 주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내가 부족해서 야단 맞았다고, 사랑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있다. 세대를 건너는 감정의 유전. 지금 이 순간, 나를 통해 또 이어지고 있다.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그랬던것처럼 느릿하고 실수많은 아이를 보면 열불이 난다. 하지만 그 열불 속에는 '위로 받지 못하는 나'가 있다.
오늘 아침, 나는 열불 속에서 어린시절 나를 만났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혼자 내버려뒀던 그 아이를 안아준다.
"네 잘못이 아니야. 혼자 둬서 미안해."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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