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과 어깨동무 한 날

by 솔솔솔파파


우리 집 1솔이는 6학년 아들이다. 이제 목소리가 굵어지고, "몰라", "그냥", "됐어", "하지 마"라는 소리를 더 자주 한다. 첫째라 그런지 키우면서 유독 추억도 많고, 실수도 많았다. 마냥 품 안에 귀염둥이 일 줄 알았는데, 이제 사춘기라니... 하루하루 아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 가장 낯선 것은 잘 웃지 않고 대화가 짧아진다는 것이다. 어릴 적에는 말도 많고, 까르르 까르를 잘 웃던 그 아들은 이제 없다. 그래서 괜스레 슬퍼지는 요즘이었다.


그날도 저녁을 먹고, 운동으로 동네 두 바퀴 돌고 오기로 했는데 1솔이는 오늘은 돌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다 결국 엄마의 반강요에 못 이겨 나가서 돌고 왔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매일 컴퓨터 또는 TV 앞에 앉아 움직이지 않기에 내린 엄마의 처방이었다.


동네 두 바퀴 돌고 온 1솔이의 숨소리가 마음속 반항심과 함께 거칠다. 1솔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야구다. 요즘은 야구에 푹 빠져 쉴 때마다 프로야구를 보거나, 마당에 나가서 3솔이와 야구를 한다. 1솔이는 아직 가라앉지 않은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TV를 틀어 야구를 본다. 응원하는 팀의 야구를 보며 소리를 지르고, 응원가를 따라 부른다. 자기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그런데 이것의 부작용이 있다. 바로 응원하는 팀이 졌을 때이다. 그날도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응원하는 팀이 졌다. 잠시 수면아래 있던 분노와 짜증이 다시 올라온다. "알았어요. 한다고요." 씻으라는 엄마의 말에 송곳처럼 대답한다. 동생에게 괜한 일로 소리를 지른다. 난 저 기분이 뭔지 안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그 "빡침". 응원하는 팀이 졌지만 내가 패배자가 된 그 기분. 나의 그 불쾌한 마음이 '너 때문이야'하는 마음. 그리고 사실은 '너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몰려오는 미안함. 그리고 한심스러운 자신의 모습. 이 복잡한 감정의 늪에 빠지면 한 참을 헤어 나오기 어렵다.


어쩌면 사춘기라는 시기가 이런 시기가 아닐까 싶다. 아무것도 모르겠고, 흔들리고, 불안하고, 괜히 짜증 나는 혼돈의 시기. 몸의 변화가 당혹스러우며 부모의 잔소리에 알레르기가 생기는 시기. 부모를 사랑하면서도 원망하는 시기.


나는 히어로가 되어 감정의 늪에 빠진 사춘기 아들을 구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1솔아, 아빠랑 잠깐 나갔다 오자."


"어디?" 또 산책 가자는 소리로 듣고 인상부터 쓴다.


"차 타고 바람 좀 쐬고 오자~"


"차 타고? 어디 가는데?" 걷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조금 열렸다.


"모르겠어. 지금처럼 이유 없이 짜증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그냥 그곳에서 벗어나 보는 거야."


"알겠어."


시간은 저녁 8시. 다른 때 같으면 한 참 집 정리하고, 씻고, 잘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 외출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1솔이에게는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해방감을 느껴 보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우리는 차를 타고 읍내로 나왔다. (집 주변은 다 논밭이라 개구리와 새소리만 가득하다.) 차를 타고 오면서 나는 1솔이가 좋아하는 공차를 사 주면서 잠깐 이야기하고 돌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주차를 하는 곳 바로 앞이 유명한 삼겹살 집이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나온 길이라 밥 생각은 없었지만 며칠 전 그 식당에 가고 싶다는 1솔이의 말이 생각나 무심히 말을 던졌다.


"고기 먹을래?"


"진짜? 그럴까?"


지난겨울 크리스마스 아침에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발견했을 때의 그 표정이다. 눈은 커지고, 궁금증으로 가득했으며, 입은 그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웃고있으며, '설마'했던 마음이 '진짜야?'로 바뀌는 순간. 평소에 이런저런 핑계로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주부아빠의 절약정신을 알기에, 아들에게 이 제안은 동화 속 이야기처럼 들렸을 것이다.


"근데 방금 저녁 먹었는데 먹을 수 있어?"


"먹을 수야 있지."


먹는 것에 늘 진심인 아들에게 물으나마나 한 질문이었다. 우리는 신나서 당당하게 입장했지만 아쉬움 가득 않고 나와야 했다. '주문 마감' 영업시간은 남았지만 주문 시간은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집을 찾기로 하고 아까보다 더 신나게 걸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아들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일명 어. 깨. 동. 무!

격이 없고, 친한 사이이고, '난 네가 정말 좋아'라는 감정을 제스처로 표현할 때 하는 그 행동을 나에게 했단 말인가? '콰르릉' 아들과 나 사이에 작은 벽 하나가 허물어졌다. 어릴 때는 너무 껌딱지여서 정말 잠시도 내려놓지 못했던 아들이었는데,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무뚝뚝해지고 길에서 내가 먼저 어깨동무나 끌어안으려고 하면 손을 뿌리쳐 버리던 녀석이 그 귀한 팔을 내 어깨에 올려주니 감동이었다. 사춘기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인가? 연애때도 못했던 밀당을 아들과 하게 될 줄이야. :) 이제 제법 키가 커서 나랑 어깨동무를 해도 자연스러운 높이다.


우리는 차선으로 양꼬치 집에서 양꼬치를 먹고, 오락실에 가서 농구와 펌프 게임을 하고, 인형 뽑기도 하였다. 모두 아들과 처음 해 보는 것이었다. 아들은 처음으로 인형 뽑기를 하면서 재미있어했다. 평소 아빠라면 절대 안 시켜 줄 인형 뽑기를 하면서 어리둥절 해 하는 모습니다.


"아빠, 이렇게 돈 펑펑 써도 돼?"


나의 그동안의 삶을 보여주는 아들의 말 한마디가 가슴을 울렸다. 말은 안 했지만 아들에게는 '오늘 우리 아빠가 미쳤어요.' 날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그날 오락실에서 쓴 돈은 무려(?) 5천 원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미안하다. 아들. 그동안 아빠가 너무 아꼈구나.'라며 반성문을 썼다.


효과는 좋았다. 난 5천 원을 쓰고, 세상에서 제일 돈 잘 쓰는 아빠가 되었다. 나도 기분 좋아져서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타로밀크티 with 펄'로 2차를 쐈다. '오늘 너무 돈을 물쓰는 쓰는거 아냐?'라는 소리가 살짝 올라왔지만 '괜찮아. 이런 날도 있는거야.'하면서 내 마음을 달래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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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렇게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험은 돈으로 매길 수 없는 멋진 장면을 선물해 준다. 나는 아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건넸고, 아들도 그 어느 때보다 나의 말을 잘 들어주었다. 혼란과 불안의 문을 처음으로 열고 들어간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흔들림 없는 아빠의 모습이다. 사랑이 있는 권위. 이것이 사춘기 아들에게 아빠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1솔이가 말했다.


"아빠, 앞으로 자주 화나야겠어." 우리는 함께 웃었다.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오늘 밤은 1솔이에게 그냥 지나가는 하루가 아니라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아빠와 함께 한 첫 번째 '일탈'의 밤 말이다.


사춘기는 아이에게만 혼란스러운 시기가 아니다. 부모에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어떻게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사랑을 전할 것인가. 언제 다가가고 언제 물러나야 하는가. 그 절묘한 타이밍을 찾아가는 것이 사춘기 부모의 숙제인 것 같다.


때로는 계획된 교육이나 훈계보다 그냥 함께 있어주는 것,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는 것이 더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1솔이는 앞으로도 여러 번 짜증을 내고, 반항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오늘 밤을 기억할 것이다. 아빠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었던 그 밤을. 그리고 그것이 흔들리는 아이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시처럼

흔들리는 시기를 잘 보내면 분명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사춘기 1솔이와의 어깨동무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도 이런 순간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며, 오늘 밤처럼 아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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