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처음 보내는 부모의 마음
첫째(1솔)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이야기다.
어느 날 아이가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집에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엉엉 울면서 안 가려고 내 손을 꼭 붙잡던 그때. 그날 내가 속으로 삼킨 죄책감은, 시간이 흘러도 쉬이 가시질 않았다.
그땐 방법을 몰랐다. 어떻게 보내야 덜 미안할 수 있는지, 어떻게 다독여야 내 마음이 덜 무거울 수 있는지.
아침마다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달콤한 간식을 꺼냈고, 때로는 "이 정도는 다 겪는 거야"라는 말로 나 자신을 설득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를 향한 말이 아니었다. 나에게 하는 변명이었다.
어느 날, 데리러 간 어린이집에서 1솔이는 멍한 얼굴로 TV를 보고 있었다. 웃지도, 말하지도 않고, 그저 만화 속에 숨어 있는 듯한 눈빛. 그 모습이 왜 그렇게 낯설고 아프던지. 그날 이후, 나는 조용히 무너졌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말 안 들으면 교장실 간다"는 담임 선생님의 협박과 정말로 교장실에 들어가서 무서웠던 시간들. 내가 데리러 갔을 때 "1솔이~ 선생님한테 뽀뽀하고 가야지~" 하며 다정한 얼굴로 인사했던 교장선생님 모습에 나는 아이가 그런 무서운 곳에 있을 거라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다. 아이 앞에선 다정하고 따뜻한 웃음.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그 웃음 뒤에, 아이의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그런 얼굴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웃었다. 아이를 그렇게 보낸 날들. 나는 후회하고 자책하고 있었다.
셋째(3솔)를 처음 보낸 날, 나는 또 같은 풍경 앞에 서 있었다.
아이는 내 품을 떠나기 싫어 안간힘을 썼고, 나는 다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또 한 번 아이의 눈물보다 내 불안부터 감췄다. 며칠 후, 아이는 울지 않고 교실에 들어갔다.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울지 않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더 아팠다.
그래서 어느 날,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아들, 무서우면 울어도 괜찮아.”
아이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안 울어.”
나는 한 번 더 다정히 말했다. “진짜야, 무서우면 울어도 돼.”
아이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진짜 안 울어.”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아이에게 ‘울어도 괜찮아~’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 말은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누군가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계속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울어도 돼~ 슬프면 누구나 울어도 돼~”
이 말을 하면서 난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괜찮아. 울어도 돼. 슬퍼도 돼. 불안해도 돼. 넌 그럴 자격이 있어.'
내 마음속에서는 이런 말들은 계속 들려왔다.
아이 어린이집 보내려고 준비하다 말고 울고 있는 내 모습이 웃기기도 했지만,
그렇게 한 번 울고 나니 마음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어릴 적 엄마 품에 안겨 펑펑 운 것처럼 후련했고, 위로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고, 내 몸과 마음은 너무 가뿐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죄책감은 사랑의 다른 얼굴이라는 걸. 우리는 사랑해서 미안하고, 사랑해서 억지로 버틴다.
누군가는 말한다. "부모는 강해야 해. 흔들리면 안 돼."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흔들리는 부모가 아이를 더 잘 안아줄 수 있다. 우는 부모가 아이의 울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오늘도 어린이집 앞에서 망설이는 모든 엄마 아빠에게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애쓰며 참았던 눈물, 그건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이미 아이에게 닿아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죄책감에서 벗어나 힘들면 가끔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습니다. 힘들면 울어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