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렇게 써야 할 것 같아서’
예전에 드라마 「대장금」에서 아역 배우가 했던 한 대사가 있다.
“그냥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
그 장면을 정규 방송으로 본 나는 순간 놀랐다.
몇 해 전, 대학교 강의 시간에 내가 교수님께 했던 말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 어떤 과목의 리포트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주어진 문장을 다듬어 제출하는 간단한 과제였다.
나는 문장을 내 방식대로 고쳤고 교수님은 다음 강의 시간에 내게 물으셨다.
“문장을 왜 이렇게 고쳤지?”
나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왜 그래야 할 것 같은데?”
“그냥, 그래야 문장의 맛이 살아날 것 같았어요. 뭐라 딱히 설명은 못 하겠어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고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왜 그렇게 고쳤는지는 설명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고쳐야 문장이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은 나를 앞으로 부르셨다.
원문과 내가 고친 문장을 번갈아 읽게 하신 뒤 내가 손본 문장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지금은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교수님이 내 문장을 칭찬하셨고
내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 없었던 그 순간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경험 때문인지 어린 장금이의 그 대사를 들었을 때
문득 ‘아,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설을 쓸 때 플롯을 미리 짜지 않는다.
줄거리도 머릿속에 그려두지 않는다.
첫 문장을 겨우 떠올려 쓰면
그다음은 단편 분량의 삼 분의 일, 많게는 절반까지 단숨에 썼다.
일종의 자동서기다.
나는 당시에 글을 주로 컴퓨터가 아니라 손글씨로 노트에 썼다.
가끔은 처음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한 번에 완성된 적도 있었다.
물론 그 문장들은 엉성하고 구조도 허술했지만
그 순간의 리듬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 번은 절친한 친구가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약간 미친 사람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그때는 졸업작품을 다음 날까지 제출해야 했으니
광기 어리게 쓰지 않았으면 졸업 작품을 완성 못했을 수도 있다.
제 때 제출하지 않으면 졸업을 못하니까 말이다.
그런 내가 올해부터 수필을 정기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가끔은 구조를 짜고 쓰기도 했다.
정말 몇 번 안 되는 일이었지만
내게는 거의 삼십 년 만의 변화였다.
그런 내가 올해부터 수필을 정기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아주 가끔은 머릿속에서 구조를 짜고 쓰기도 했다.
정말 몇 번 안 되는 일이었지만
내게는 거의 삼십 년 만의 기념비 같은 변화였다.
리뷰나 비평, 기행문은 애초에 생각을 정리하며 쓰는 글이다.
나는 그것을 2차 창작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시와 소설, 수필은 내게는 온전한 1차 창작이다.
나는 그저 첫 문장의 힘을 믿고 꾹꾹 눌러 쓴다.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분들의 글을 읽으면 그냥 압도당한다.
나는 그저 급할 때 즉흥적으로 쓰는 편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그런 방식이 내 안에 잠겨 있던 문장을 꺼낸다.
이유를 묻지 않아도 내게 온 문장들.
설명하지 않아도 살아 있는 문장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든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