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돌아오는 것들
Words are flowing out like endless rain into a paper cup
They slither while they pass they slip away across the universe
- The Beatles, 「Across the Universe 」
끝없는 비처럼 종이컵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미끄러지며 지나가는 동안 그들은 우주를 가로질러 사라집니다
- 비틀즈, 「Across the Universe」
가끔 우주를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어서 그 광활함에 나의 상상력의 한계를 느낀다.
그럴 때면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빅뱅 이야기도 나왔다.
그 무렵 나도 빅뱅을 알고 있었다. 거기에 혼자만의 상상을 덧붙여 말도 안 되는 추론을 했었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선생님은 우주가 태어난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팽창하고 있다고 하셨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 표정에 뭔가 생각이 있다는 걸 느끼셨는지 친구들과 함께 나눠보자고 하셨다.
(나는 ADHD가 너무 심해서 담임 선생님들의 요주의 인물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우주는 언젠가 다시 쪼그라들거라 생각해요. 풍선처럼 부풀고 있지만 결국엔 다시 처음처럼 돌아갈 거예요."
기억나는 대로 쓰면 이렇다.
선생님은 흥미롭다는 듯 몇 가지 질문을 더 하셨다.
무슨 대화를 주고받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나는 것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으셨고
친구들에게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나나 선생님에게 물어보라 하셨다.
남자아이들은 주로 우주선이나 외계인에 대해 묻고 여자아이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만 열한 살 아이의 엉뚱한 상상을 끝까지 귀 기울여 들어주셨다.
그다음 시간은 아마도 미술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우주를 그렸지만
나는 바닷속에서 일하는 로봇을 그렸다.
선생님은 로봇 손가락이 왜 세 개인지 물으셨고 왜 바다를 배경으로 선택했는지도 궁금해하셨다.
나는 말했다.
"우주로 가기 전에 예행연습이 필요하잖아요. 그게 바닷속 탐험이에요."
"바닷속에서 광물을 채취하려면 손가락 세 개면 충분해요."
"조립도 빨라야 하고 고장 나면 고치기도 쉬워야 하니까 손가락이 세 개예요."
내 그림 속 로봇은 하반신이 탱크처럼 생긴 작업용 로봇이었다.
나는 그림을 정말 못 그려서 늘 '미'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그해 6학년 때만 유일하게 '우'를 받았다. 예체능엔 재능이 없었지만 내 상상력으로 한 계단 상승 했다.
요즘도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주 건너편엔 뭐가 있을까.
내가 죽으면 그쪽으로 돌아가는 걸까. 이 광활한 우주 속 지구를 생각하면 까무룩 한 기분이 든다.
티끌보다 작은 지구에서 고민하고 후회하고 슬퍼할 이유가 있을까 싶다가도
백 년도 채 살지 못할 이 인생이
때로는 영원처럼 느껴져서 그 감정이 특별할 수도 있고
평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유를 하면서도 나는 내일 업무를 떠올리고 다음 주가 될지 모를 장기 출장을 걱정한다.
나는 참 세속적인 사람이다.
머릿속은 한없이 멀리 가는데도 마음은 다시 일상의 균열로 돌아온다.
더벅머리 시절의 나를 그리워하다가도 어느새 어른이 되어 오늘의 일정을 다시 계산한다.
어쩌면 내가 겪은 모든 기억들은 우주 어딘가를 떠돌다가
어느 순간 내가 그것을 떠올리는 찰나에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내게 돌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된 기억은 너무 멀리 가서 회신받기 어려운 것이다.
아니면 어른이 된 머리로는 그 시절의 순수한 기억을 온전히 받지 못하거나
이미 훼손된 정보를 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가속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정신을 똑바로 붙들고 살기로 마음먹는다.
내 안의 소우주는 이 거대한 우주의 한 조각이다.
나는 오늘도 글을 읽었고 글을 썼고 생각을 했다.
그러니 나는 살아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계속해서 가속 정진하며 내 삶을 팽창시키고 있다.
문득 내가 하던 생각에 수학적 언어를 덧씌워본다.
우주의 팽창률과 팽창 속도
우주 팽창률 = 1 Mpc당 팽창 속도 = 허블상수
단위는 (km/s)/Mpc
팽창 속도 = 허블상수 × 두 천체 사이 거리
단위는 km/s
어렵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천체물리학과 거리를 두기로 한다.
아직 썸을 타기엔 서로 너무 모른다.
어쩌면 우주도 나처럼 말없이 돌아오는 길을 찾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