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얼마 전 선배와 오래된 아파트 옆을 지나던 길이었다.
그때 눈앞에 초록색 물결이 가득 차 있었다.
푸른빛으로 뒤덮인 이름 모를 덩굴과
꽃들과 화초들이 활짝 피어 화려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잎사귀들이 바람을 따라 흔들릴 때면
마치 나를 반겨주는 강아지처럼 살랑거렸다.
느긋한 바람이 식물들을 훑고 내 곁을 지나갈 때
싱그러운 향이 코끝을 스쳤다.
같이 걷던 선배가 왜 멈춰 섰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몇 달 만에 제대로 마주한 푸른 물결이라며
잠시만 더 보고 가고 싶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는 형이 사는 곳이었고
우리는 막 사우나에서 목욕을 마친 뒤 돼지갈비를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때 형에게 예전에 내가 써줬던 글이 기억나는지 물었다.
“아, 그 2등 했던 글?”
“응, 기억하네.”
형은 내가 1등 할 줄 알았는데
너무 기성 냄새가 나고 어디선가 본 듯한 글 같아서 2등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20년 전쯤, 선배는 학부 교양 강의 리포트로 수필을 써야 한다고 했다.
나는 PC방에서 수필을 써주고 술을 얻어먹었다.
리포트 주제는 대학교 안에 있는 고개에 대한 글쓰기였다.
아마 이맘때였을 것이다.
나는 이양하의 「신록예찬」을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 글을 썼다.
직접 본 적 없는 장소였기에 오히려 단편소설을 쓰는 기분으로 문장을 이어갔다.
날 나는 아파트 단지의 담벼락에 기대 담배를 피우며 장난치듯 흔들리는 바람을 느꼈다.
위대한 자연의 산물인 녹음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형은 내가 다시 걸음을 옮길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줬다.
가끔 기분이 좋지 않거나 답답할 때
나는 가까운 야산이나 식물원에 들러 나무를 보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다.
주말이면 방 안에 틀어박혀 유튜브를 보는 게 일상이었다.
내게 유일한 힐링이 되어주던 녹음을 보는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좋아하던 계룡산 갑사와 한밭수목원에 가지 않은 지
족히 1년은 넘은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인공적으로 조성된 작은 아파트 단지의 조경 앞에서 걸음을 멈췄고
흔들리는 신록을 멍하니 바라봤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담뱃불을 끄고
형과 함께 돼지갈빗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지금 기억나는 건 따로 없다.
계속해서 아까 봤던 신록과 느긋한 바람,
그리고 그 속에 머금은 몽글한 습기와 피톤치드 향이 떠올랐다.
나는 형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며
종종 자리에서 나와 담배를 물고는
아파트 조경을 바라보다 돼지갈빗집으로 다시 들어가곤 했다.
별거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 순간
내 마음은 위안을 받고 치료받는 듯했다.
그냥 좋았다.
조만간 내가 좋아했던 계룡산 동학사나 한밭수목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