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위에서 엮인 삼부자의 시간
1986년쯤의 일이다.
그때는 TV에서 국내 프로레슬링을 했다.
나는 매주 그 시간을 기다렸다.
AFKN에서는 미국 WWF가 나왔다.
당시 비디오 대여점 진열대에도 WWF 테이프가 있을 정도로 인기였다.
나는 동생이나 동네 친구들과 프로 레슬링 선수 흉내를 냈다.
아버지는 가끔 심판을 봐주셨다.
거실에 담요를 깔고 우리만의 링을 만들었다.
헐크 호건이나 얼티밋 워리어처럼 포즈를 취했다.
그 시절 젊은 아버지의 웃음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그때 우리는 선수 이름을 몰랐다.
헐크 호건은 할아버지, 워리어는 인디안.
가위맨, 뱀맨, 경찰, 달러맨이라 부르며 놀았다.
이름은 몰랐어도 우리 동네에서는 통용되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짝이었던 박평산이 떠오른다.
녀석은 꼭 안드레 자이언트처럼 덩치가 크고 힘이 셌다.
나는 평산이와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서 프로레슬링을 했다.
나는 태권도를 잠깐 배워 발차기에 익숙했다.
평산이는 힘으로 밀었다.
나는 피하고 차며 버텼다.
지금 생각하면 내 스타일은 미국보다 이왕표에 가까웠다.
나는 얼티밋 워리어의 페이스페인트를 흉내 내다
엄마 화장품을 몰래 쓰다 걸려서 맞아 죽을뻔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 기억을 돌이켜보면 어처구니없는 실웃음이 난다.
우리 삼부자는 2000년대 후반까지 WWF(現 WWE)를 함께 봤다.
아버지, 나, 그리고 동생.
아버지는 덩치 큰 트리플 H를 좋아하셨다.
나는 에디 게레로의 기술에 감탄했고
동생은 레이 미스테리오의 공중기를 따라 했다.
경기가 끝나면 기술과 스토리를 진지하게 토론했다.
록이 트리플 H를 이길까.
언더테이커의 연승은 계속될까.
그 시간들이 우리 삼부자의 끈을 묶었다.
동생은 태권도 선수였다.
마음에 드는 체고 입시에 떨어진 뒤
녀석은 태권도를 그만두고 무에타이를 시작했다.
헤비급 스파링 파트너가 없다는 말에 내가 나섰다.
이종격투기 선수로 데뷔하고 얼마 후
녀석은 이삿짐 알바 중 떨어져 다쳐서 선수 생활을 접었다.
나에게 이종격투기가 기술의 싸움이라면
프로레슬링은 감정의 싸움이었다.
선과 악이 부딪히고 우정이 흔들렸다.
링 위의 드라마는 현실보다 진짜 같았다.
존 시나, 더 록, 언더테이커, 숀 마이클스.
그 이름들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지금도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 자연스레 WWE 이야기로 흘러간다.
동생과는 옛 선수들의 이름을 주고받는다.
그럴 때면 잠시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우리 가족에게 프로레슬링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다.
함께 있던 시간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에게 프로레슬링의 매력은 엔테터에먼트가 아니다.
함께 한 가족과 추억이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지금도 프로레슬링이라고 하면 진저리를 치지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