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기억이 바래기 전에 붙잡아두고 싶은 것들

by 진이설

추억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이나 일.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다.


나는 '추억'이라는 단어보다 '옛'이라는 관형사를 붙였을 때 의미가 더 아련하게 느껴진다.

'옛'은 추억처럼 지나간 때를 뜻한다. 예를 들면 '역전앞'이라는 말처럼 중복된 표현이다. '역전'은 이미 '역 앞'을 의미하지만 우리는 습관적으로 '역전앞'이라 한다. '옛 추억'도 그렇다.

'옛 추억'이라는 합성 명사는 언어경제성의 관점에서 보면 불필요하게 의미가 겹친다. 하지만 이 중복이 주는 여운이 있다. 같은 말을 두 번 되뇌며 그 의미를 곱씹는 듯한, 단순한 '추억'보다 더 깊은 시간의 결을 머금은 울림이다.


세상살이가 어디 법칙과 규범으로만 흘러가겠는가. 국립국어원조차 표준어의 경계를 종종 풀어 사회통념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표준을 받아들인다. 자장이 짜장으로 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언어는 결국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사람들의 입과 마음을 거쳐 변하고 진화한다.


누군가는 '추억'이라는 단어로 글을 쓰며 과거의 한 조각을 꺼내어 문장으로 빚는다. 첫사랑의 미소나 여름날 오후의 매미 소리나 할머니가 차려주신 정겨운 밥상 같은 장면들이 그렇게 다시 빛을 얻는다.

추억은 아름다울 수도 있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단어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사람의 감정 속에서 추억은 언제나 조금 미화된다. 시간이 지나면 모서리가 닳아 동그러 진 돌멩이처럼 아픈 기억조차 부드러워진다.

내 추억은 지금도 바래고 있다. 세월이 쌓이면 기억은 먼지처럼 겹겹이 덮인다. 그렇게 오래된 기억들은 서랍 맨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다. 그때는 아쉬운 생각도 없이 다시 꺼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무섭지만 그 당시에는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때가 오면 어쩌면 나는 추억을 회상하지도 자각하지도 못한 채 살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삶의 자비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너무 무거운 일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 아직 손에 닿는 기억들을 최대한 오래 붙잡아두려 한다. 조금이라도 회상할 수 있을 때 많이 그리워하고 많이 추억하며 살고 싶다. 언젠가 추억 없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기에 말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오직 '지금'만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 같다. 아니면 '추억'만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평온일지 공허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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