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하게 될 줄 알았어
오늘은 추석 다음날이고 내 생일이다. 명절이 끝난 집은 조용하다. 남은 송편 몇 개와 식탁 위의 과일들, 그리고 텅 빈 거실. 어제의 북적임이 빠져나간 자리엔 묘한 평화가 깔려 있다. 이런 날엔 글을 써야 할 것만 같다. 그런 것보다는 오늘이 연재일인 수요일이라는 게 더 크다.
유튜브를 보면 슬기로운 의사생활 쇼츠가 가끔 뜬다. 조정석과 그 친구들을 보면 괜히 웃음이 난다. 익준은 어딘가 나와 닮았다. 특히 고등학교 때 모든 반 친구들과 다 친했다는 점이 그렇다. 공부를 안 해도 전교 1등을 하던 건 다르지만, 중학교 때까진 나도 시험을 보면 몇몇 과목은 친구들이 나한테 물어봤다. 그러니까 완전히 다른 건 아니다고 자찬해 본다.
나는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정확히는 TV 자체를 잘 보지 않는다. 난 늘 활자 쪽이었다. 부대에 있을 때 도서관의 책을 전부 읽어서 읽을거리가 다 떨어져서 성경을 통독했을 정도다. 간부와 군무원들만 대여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유일하게 빌릴 수 있는 병사였다. 짧은 훈련병 시절엔 여동생이 단편소설을 프린트해 편지로 보내줬다. 덕분에 훈련소 중대장 앞에서 편지를 몇 번 뜯었다.
취미를 쓰라 하면 '작문', 특기를 쓰라 하면 '독서'라고 적는다. 그러면 꼭 불려 나가서 설명을 한다. 이러쿵저러쿵, 어쩌고저쩌고. TMI 기질을 한껏 발휘하면 그제야 선생님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 글도 그런 식이다. 익준 얘기를 쓸까, 독서 얘기를 쓸까 하다가 그냥 합쳤다. 읽는 사람은 "이게 무슨 얘기지?" 하겠지만, 나는 그냥 즉흥적으로 쓰고 있다. 늘 그렇듯. 오늘 같은 연휴의 날엔 말이다.
각설하고, 나는 원래 글쓰기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책 읽기였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수업시간이 지루할 때면 몰래 책을 읽었다. 처음엔 들켰지만 곧 요령이 생겼다. 교탁 앞에서도 조는 척하며 읽었다. 완벽을 위해 판서할 땐 공책을 펴고 가장 예쁜 글씨로 일부만 필기했다. 선생님 시선이 느껴지면 밑줄을 긋거나 별표를 그렸다. 일종의 '성실한 학생 코스프레'였다.
에이즈(물리) 선생님은 무관심했고, 독사(생물)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옆 친구들 뒤통수를 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증스러운 표정으로 필기하는 척했다. 그게 내 방식의 생존술이었다.
나는 인싸였다. 대여점에서 빌려온 책들이 내게 흘러들어왔고, 나는 그것들을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읽는 속도, 취향, 선호 작가까지 고려해 분배했다. 학급 독서위원, 교내 독서위원은 늘 내 차지였다. 선생님에게 뺏긴 책을 교무실에서 회수하는 것도 내 일이었다. 만화책을 돌리던 친구는 안타까웠다. 만화는 뺏기면 끝이었다. 그건 나도 도와줄 수 없었다.
나는 일진이든, 왕따든, 모두와 어울렸다. 심지어 돈을 빌린 친구 대신 받아주기도 했다.
이쯤 되면 원래 쓰려던 주제는 이미 옆길로 샜다. 하지만 결국 얘기는 한 곳으로 모인다. 나는 그렇게 책을 읽다가, 결국 글을 쓰게 되었다.
창작엔 관심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어떤 글을 보면 '이 정도면 나도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책에 끄적이던 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모과에 입학했다. '책 좋아하니까 글도 배우면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거긴 글쓰기 지옥이었다. 글을 사랑하는 미친놈들만 남는 구조였다. 묘사 두 시간, 서사 두 시간, 그리고 무한 합평. 학과에서도, 동아리에서도, 또 합평. 그게 전부였다.
나는 곧 휴학했다. 무식한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글을 안 써도 모든 글을 분석할 수 있었다. 비평 능력은 타고났다. 게다가 읽은 책이 수천 권이니 문체 감별 능력도 뛰어났다. 교수님이랑만 토론했고, 리포트는 안 내고 시험 답안지에 헛소리 작문을 써서 B를 받았다. 그 정도면 괴물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리포트 제출 시즌, 나도 써야 했다. 합평에서 그렇게 떠들어댔으니 명작을 내야 했다. 하지만 내 글은 범작도, 망작도 안 되었다.
나는 결국 휴학계를 냈다. 부모님께는 반수를 핑계로, 학교엔 병을 핑계로 말이다. 글쓰기를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때는 정말 도망치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나와 같은 99학번이다. 익준처럼, 나도 결국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추석 연휴가 조금 지나 명절의 들뜸이 가라앉은 조용한 오늘, 나는 여전히 책과 글 사이에서 나를 발견한다. 좋아하게 될 줄 몰랐던 것들을 결국 사랑하게 되었듯이, 오늘도 이렇게 쓴다.
"나는 글쓰기를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