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

채워갈 것들

by 진이설

어제저녁 내내 뭔가를 쓰고 싶었다.
제목만 '미정'으로 해두고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그 '미정'이라는 말이 내게는 설렘이었다.
누군가는 흰 도화지에 하늘을 그릴 것이다.
어떤 이는 아름다운 마음을 향해 시를 쓸 것이다.
나도 이 0과 1의 공간에서 간절한 무엇을 적고 싶었는지 모른다.

창작자에게 미정은 설렘이기도 하고 조급 함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설레었다고 쓰지만 속으로는 막막했다.
어릴 때는 문장이 아름다워야 하고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꾸준함과 성실함이 더 무거운 가치가 되었다.

한때는 힘을 주고 써서 완성하기 어려웠다.
어떤 날은 술술 써지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 간극을 줄여 양질의 글을 꾸준히 쓰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자주 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덧글은 잘 남기지 않는다.
잘 쓰는 이들 앞에서 초를 칠까 봐 주저한다.
내 말이 오해로 남을까 걱정된다.
그런 마음이 직업병처럼 남아 있다.

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소설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시 모임을 해보는 게 어떨까요?"
선배의 제안에 고개를 저었다. 15년 만에 다시 쓰기 시작했을 때는 그 고통을 잊었다고 믿었다. 막상 쓰려니 문장과 맞춤법, 끝없는 규칙들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모임을 넘기고 멀어졌다. 그 대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재즈를 듣고 미술관 근처를 서성였다.

누군가 이 글을 읽을 것을 알면서도 일기처럼 썼다.
나는 이것을 수필의 형식을 빌린 회고로 남긴다.

어느새 전환점에 섰다.
남은 시간이 지나온 시간보다 짧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쓰고 싶다는 마음은 남아 있었다.
이 공간에서 공감과 코멘트를 남겨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해 준다.
늘 고맙다. 따뜻한 말과 좋아요에 고맙다.

버리지 못한 습관과 비우지 못한 마음을 안고 산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내 몫이라 여기려 한다.
어제 초저녁부터 뭘 쓸까 끙끙하다 겨우 완성했다.
이제야 잠을 편하게 잘 것 같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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