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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기 초보 Jul 15. 2022

<엘르> 리뷰

가학과 피학 사이의 그녀

그녀는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이다. 성폭력에 피해를 입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상황을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남성 권력에 의해서 피해를 입었지만, 자신이 가진 사회적 지위를 통해서 하급자들을 깔아 뭉게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게임 속에서 더 큰 폭력적인 장면을 바라고, 아들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통제하고자 한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천박하게 만들어버린다. 아버지가 일으킨 연쇄 살인 사건 그는 피해자 같이 보이고 그 트라우마 속에서는 살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그 것은 표면적일 뿐 그녀의 담담한 태도 응시하는 모습을 보면 그녀도 가해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성폭력 피해를 입었지만 그녀가 즐기는 것은 성폭력의 쾌락이 아닌 것 같다. 자신이 처한 어찌보면 범인으로 보이는 한 개인을 아작 낼 수도 있다는 자신감 일수도 있다. 범인은 누군지 모르지만 자신이 신고한다면 혹은 자신이 잡고자 한다면 잡힐 것이라는 확신이 느껴진다. 그 속에서 자신이 만든 판에서 게임을 시작하는 게임의 진행자가 되는 것이다. 편견에 잡힌 여성 서사에서 여성은 항상 피해자이다. 어떠한 사건에서 피학적인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 미셸은 다르다. 피해자이지만 가해자도 된다. 피학만 즐기는 게 아니라 피학의 상황에서 가학도 끌어낸다. 어찌보면 반 여성적인 이 영화가 지극히 페미니즘적으로 올라서는 순간은 거기서 등장한다. 여성이 피해자만 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가해자로 존재할 수도 있다. 그 것은 미셸 르블랑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모든 여성들(elle)의 상황이다. 여성은 더 이상 피해자로만 있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종결되는 지점도 특이하다.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영화는 종결을 향해 간다. 게임은 완성되었고, 로버트와의 불륜도 끝낸다.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에게는 신고 하겠다고 말한다. 물론 마지막 신고하겠다는 것은 진심이 의심되기는 한다. 모든 게 설계가 아닐까라는 의문과 함께. 로버트와의 불륜을 말한 것도 마찬가지다. 로버트가 버림 받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게임이 완성된 이후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부하직원을 전 남편의 쓸 데 없는 아이디어를 듣게 만든 것도 사소한 복수가 아닐까? 영화가 왜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끝났는가 그게 과연 아버지의 자살일까? 미셸은 묻는다 아버지가 언제 죽었는지. 아버지의 죽음은 미셸이 면회를 하겠다는 연락과 관계되어 있다. 아버지의 죽음도 미셸의 계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남성들의 가해만 있는 세상에서 미셀(elle, 그녀)의 가해가 아닐까? 너희들은 가해하고 있다고 믿겠지만, 나는 피해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가해는 너희가 받고 있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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