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때 저녁 뭐 먹을지 생각하면 돼지라던데, 나는 내일 점심도 고민한다
3개월 임시 주택을 떠나 장기 보금자리로 이사 오면서 억눌렸던 요리 세포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3개월 임시 주택에서는 뭘 하는 것이 사치였다. 이사할 때 식재료 옮길 것도 귀찮았고, 새로운 집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집에서 뭘 해 먹고자 하는 식욕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과자로 때우거나, 집 근처 식당에서 혼밥 하며 허기를 때워왔다. 먹는 것이 인생의 제1 즐거움인 나의 평소와는 너무 다른 삶이었다.
하지만 이사를 온 지금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냉장고 안, 상온 식재료를 파악하는 일, 매일 필요한 식재료 마켓컬리 장바구니에 채우고 5만 원 이상이 되면 주문하기, 매일 끼니를 뭐 해먹을지 생각이다. 가끔 집에서 홈파티를 벌일 때면 머리가 더 바쁘다. 일주일 전부터 뭘 해먹을지 1차, 2차, 3차까지 고민한다. 이런 나를 보면 친구들이 너무 부담스러워할까 봐 1차는 시키는 편이지만, 1차도 할 수 있는데!, 하면서 속으로 아쉬워한다. 이건 무슨 병인가
이 병의 기원은 엄마가 틀림없다. 예전에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엄마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친구들을 위해 늘 한상을 거하게 내왔고, 다들 호호호호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대단한 음식들은 아니었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수육, 부침개, 도토리묵 등 한식 위주였고 간단하게는 비빔국수도 자주 등장했다. 나는 엄마가 왜 저렇게 사람들을 불러서 음식을 먹이고, 매번 귀찮게 치울까 했는데 그걸 지금 내가 하고 있으니 헛웃음이 난다.
누구를 대접하는 것도 좋지만, 요새는 나 자신을 대접하는 데 누구보다 진심이다. 코로나 확진자 급증으로 재택이 다시 시작되었고, 날씨는 덥고 비도 계속 와서 배달을 시킬 상황도 아닌 요즘이다. 그래서 집에 있는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해서 아침 점심 저녁 나를 잘 먹이려고 노력 중이다.
자취생의 소울밥, 간장계란밥을 해먹을 때도 있고 그냥 스팸에다가 김치만 해서 간단하게 먹기도 한다. 간장계란밥은 내 최애 음식 중 하나인데 계란 하나는 아쉬워서 늘 두 개를 반숙으로 만든다.
조금 여유 있을 때는 술과 함께 요리를 만들기도 한다. 삼겹살 수육을 좋아하는데, 수육을 삶아서 저렇게 김치와 먹으면 정말 꿀맛이다. 보쌈과 와인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먹으면 의외로 잘 어울린다(사실 보쌈에는 뭔들). 알리오올리오도 정말 자주 해 먹는 음식이다. 처음에는 면에 소스를 코팅하는, 일명 ‘만타까레’를 진짜 못 했었는데 이제는 얼추 좀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레스토랑 맛은 안 난다. 이유가 뭘까. 왠지 치즈를 안 넣어서 그런 것 같지만, 치즈 싫어해서 계속 안 넣을 거다~~
티비를 보면 일명 ‘무 식욕자’가 종종 등장한다. 무언가를 볼 때 ‘맛있겠다!’는 생각이 안 들고, 그냥 하루하루 허기만 채우고 만다는 그 사람들. 티비를 보기 전까지는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는데, 정말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아침 먹으면서 점심, 저녁을 함께 고민하는데… 그들 눈에는 내가 신기하겠구나 생각도 든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먹을 거에 진심인데 살이 이 만큼만 찐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