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1> 인연의 흔적... 할머니

그리운 화투판의 교장선생님

by 소망

어머니 사별과 아버지의 재혼 후, 2학년 때 할머니께서는 읍내에 집 한 채를 사셨다. 그리고 오래 살고 계셨던 더 깊숙한 시골 동네로부터 살림을 옮겨오셨다.


부모님은 읍내의 다른 집에서 월세를 시작하셨고, 잠깐 작은 중국집을 운영하셨다. 우리 남매는 근처로 옮긴 할머니 댁에서 살게 되었다.


할머니는 배포가 크고 강단이 있으신 분이었다. 삼촌ㅡ두 아드님ㅡ을 잃고 할아버지는 치매기가 생기셨지만. 할머니는 심신이 강건하셨다.


할머니의 삶도 녹녹지 않으셨겠지,.. 생때같은 아들을 둘이나 앞세워 잃으셨으니 말이다. 할머니의 속도 속이 아닐 것이었다.


할머니는 둥그런 얼굴에 이목구비도 크시며 희고 깨끗한 피부를 가지셨다. 긴머리를 올려 늘 쪽진 머리를 하셨다. 웃음도 많으셨고 위트도 있으셨다. 목소리는 호탕하셨고 늘 당당하셨다.


새로 이사온 동네에서, 오시자마자 할머니들의 교장선생님이 되셨다. 교장선생님? ㅎㅎ 민화투의 교장이셨다. ㅡ동네 어른들이 그리 부르셨다.ㅡ

어릴 적 할머니는 동네 할머니들과 늘 화투를 즐기셨다. 우리 안방에서 저녁이면 늘 화투 팀이 결성되었다. 나는 귀퉁이에서 말 그대로 심부름꾼이었다. 할머니 생전, 고교 시절까지도 화투는 계속되었고 공부하고 있다가 겨울이면 동치미 떠다 나르던 일도 계속되었다. 특히 따듯한 방을 찾던 겨울에는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풍무로 왕겨를 때기도 하고 연탄을 피우던 그 시절. 겨울이면 방 구들도 잘 덥혀 놓아야 했다. 동네 할머니들에 비해 우리 할머니는 여장부 같았다. 할머니들께 화투판 규칙을 설명하셨고, 계산도 다른 분들보다 빨라서 후딱 정리해 주시기도 하셨다. 조곤조곤 말씀은 잘하셨으나 호통도 치며 약간은 막무가내적인 면도 있었다.


3학년 이후, 할머니는 서울에 계신 막내 따님 댁으로 한 번씩 출타를 하셨다. 그럴 때면 내가 밥을 해서 할아버지를 봉양했다. 할머니는 내게 살림을 가르치셨다. 연탄 가는 법과 밥 하기 등.


할머니를 생각하면 탄 밥 기억이 많다.

지금 지인들은 할머니를 추억하실 때 살림은 잼병이셨다며 웃으시지만, 밥 할 때마다 불 조절과 시간을 못 맞춰 할머니는 늘 밥을 태우셨고, 탄 누룽지밥은 늘 내 몫이었다. 매우 자주 난 씁쓸한 누룽지밥을 먹었다.


김치찌개를 끓이고 옆에서 보던 눈썰미로 소금 간 맞춰 깍두기도 해보았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할머니의 서울행은 더 잦았다. 고모님이 아프셔서 자주 오래 다녀오셨다.


5학년 때는 할아버지와 어린 동생까지 돌봐야 했다. 할아버지께서 정신이 드실 때는 나를 '에미 잃은 불쌍한 것' 하셨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하실 때는 마구 욕을 하셨다. 그런 할아버지께서 동생은 늘 이뻐하시며 안아주셨다. 먹을 것을 꼭꼭 싸맸다가 동생을 먹이셨다. 나는 어린 마음에 늘 힘들었고 할머니가 오시기를 학수고대했다.


2학년부터 계속 할머니의 껌딱지였고 할머니를 무척 좋아했는데, 할머니의 부재는 큰 외로움이었다.


그 시절 집 나간 엄마가 두고 간 어린 동생은 똥오줌 싸대는 유아였지만, 외로운 마음에 의지가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부재가 계속 이어지자 학교에 등교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언제나 오시려나...'

기약 없고 소식을 전해 들을 수도 없으니 늘 할머니를 그리며 기다렸다.


'서울은 어디쯤에 있을까... 걸어갈 수 있는 곳일까?'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동생을 업고 늘 하늘을 보며 동네를 돌았다.


"아줌마, 서울요~ 걸어서 갈 수 있어요?"

옆방 아줌마께 물으니

"왜? 할머니 찾아가려고?" 하시며 웃기만 하셨다.

아줌마는 가당치도 않은 소리라 더 말씀도 없었지만, 나는 그저 갈 수만 있을 것 같았다.


그 당시 흑백 TV에서 '엄마 찾아 삼만리'를 몇 번 본듯하다. 그것을 알고 있었으니, 나도 할머니 찾아 삼만리를 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동생은 어쩌지?'


할머니 서울 가시고 한 달이 다 되어 갈 때쯤, 어느 날에 할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날씨도 화창했다.

'서울을 모르고 못가도 걸어갈 만한 곳인가 시도라도 해봐야겠다.' 싶어 동생을 업고 서울 가는 방향으로 무조건 걸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데 여전히 동네를 조금 벗어났을 뿐이었다. 낯선 길을 걷다 보니 몇 시간이 흐르고 등에서 동생은 칭얼거렸다. 할아버지의 식사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가던 길 위에 멈춰 섰다.

그리고 멀리 달려가는 완행 버스의 뒷꼭지를 보다가, 먼 하늘을 보다가 하며 망연자실했다.

먼 하늘은 진짜 먼 것처럼 보였다.


앞서가던 버스가 서며 안내양이 승객을 태운다.


'저렇게 몇 번을 서야 서울에 도착하는 걸까?'


그때서야 직감적으로 서울이 걸어서는 갈 수 없을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돌아섰다.


짙은 그리움이 어린 내 몸과 생각에 절어 들었다. 그리고 난 할머니를 보고 싶어도 당장 볼 수 없음을 알았다. 포기했다.





도시물 드신 할머니가 돌아오시면 난 너무나 기뻤다. 할머니는 따님댁에서 새 옷도 얻어 입으셨고 낯빛도 환해지셔서 오셨다.


그날 저녁부터 우리 집에서는 다시 화투판을 벌였다. 할머니가 돌아오셨다니 팀원들이 모여들었다. 1원부터 5원, 10원짜리 동전을 쩔그랑 흔들어대며들 오셨다. 할머니가 오시면 우리집은 생기가 돌았다. 곁에서 심부름만 해도 난 신이 났다.


이웃 할머니들은 나를 늘 착하다고 칭찬하셨다. 진짜 착했던 거였나?ㅎ


난 할머니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후 돌아가실 때까지 손녀의 의리를 다하고자 했다.


지금은 생각한다.

할머니도 나를 사랑하셨을까?



할머니와의 인연 이야기는 다음 편에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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