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컷 14... 두부 두모의 배움

by 소망

더위가 한창 극성인 여름이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쓰려는데, 고민을 했다.

재미도 있으면서 징한 배움이 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 병상에서 있으니 의욕이 떨어짐도 사실이다.


소심하고 용기 없고, 열등감 많아 누구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고 움츠린 마음으로 살았던 나란 사람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 중에 있었던 일이다.




2024년 9월 25에 쓴 글이다.




토요일 저녁, 공ㅇ 재래시장에 들러 모판 두부 두 모를 사 왔다.

조림용으로 쓰기에는 재래시장 두부가 마트 것보다 단단해서 더 낫다.


"사장님 두부 두 모만 주세요."


전에 한 모 사 갔는데 많이 눌렸길래 혹시 사각통에 담아주시려나 하는 기대를 하며,

"지하철 타고, 길게 갑니다." 했다.

"어디까지 가시나~?"

"ㅇㅇ역까지 갈 거예요."

"그러면 이 두부로 가져가야지."


하시더니 모판 두부 대신 사각통에 담겨 밀봉된 두부를 얼음물 담긴 통에서 꺼내 주셨다. 멀리 간다니까 생각해서 그것으로 주신 것이다.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에 넣었다.

월요일에 청국장 끓이는 데도 넣고 조림을 하려고 꺼내 밀봉된 두부를 열었다. 그런데 만지는 대로 다 부서지는 것이다. 약간 냄새도 나는 것 같고. 잡을 때마다 부서져서 다 으스러졌다. 황당해서 일단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넣고 비닐봉지에 싸서 냉장고에 넣었다. 기분이 찜찜했다. 일부러 가긴 그렇고 수요일에나 갈 텐데, 며칠 지나고 가서 말하면 믿고 바꿔주시려나... 어쩌면 냉장 보관 안 해서 그럴 수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장님도 시장에서 오래 장사하신 ㅡ즉 사람을 많이 상대해 본ㅡ 대한민국 아줌마다. 마구 우기는 분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두부는 마트서 새거 사다 먹었지만, 1kg 이상 되는 두부를 또 백팩에 넣고 바꾸러 갈 걸 생각하니 벌써 지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었다.

가서 환불 교환은 못해도 오래되었거나 불량한 식품을 파셨다는 것은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았다.


드뎌 오늘 수요일,

백팩에 두부 두 모까지 메고 돌ㅇㅇ역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근처 은행일을 보았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화ㅇㅇ역까지 가서 운동을 한 후, 20여 분 걸어서 시장으로 갔다.


가면서 어떻게 하면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예전의 나라면 두부 때문에 계속 신경 썼을 테고 보통은...

" 아줌마, 이런 두부를 파시면 어떡해요! 두부가 상했는지 다 부서져요. 바꿔주세요~." 했을 것 같다. 그도 아마 커다란 용기를 내겠지만, 생긴 게 원래 막가파 아줌마처럼 가슴을 벌렁대며 말했을 것이다. 아마 인상도 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바뀐 건 이런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 나와 상대를 위한 최적의 대화법을 궁리하게 되었다.

파신 사장님도 두부가 상한 건지 모를 수도 있고, 사간 나의 과실이란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나의 입장에서 무조건 상대를 오해하는 입장을 취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만에 하나 오래된 두부를 알고도 팔았다면 그분이 반성할 일이지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다. 그리고 객관적 사실만 전하고 사장님의 대응을 먼저 본 후 말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근 몇 년 동안 이런 일은 없어서 살짝 긴장이 되었다. 사람과의 충돌 혹은 언쟁엔 자신 없다. 최대한 정중하게 대하며 신중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두부집 앞, 다행히 다른 손님이 없고 시간도 3시가 넘어서, 아침부터 이런 일로 오면 괜히 장사하는데 재수 없다는 소리 들을 일도 없으니 접근하기가 편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사장님이 "어서 오세요." 하신다.

물건 사러 오는 손님인 줄 아셨겠다.


"저 이런 일로 오게 되어 죄송합니다. 제가 토요일에 두부 두 모를 사 갔습니다. " 했더니 눈썰미가 있으신 사장님,

"아~~ 두 모 사갔지요."

기억난다는 듯, 이미 무슨 일인지 눈치채신 것도 같다. 워낙 장사하시는 분들은 눈치 100단 아니신가.

그래도 정확한 워딩은 드려얄 듯해서 말을 이어갔다.


"가자마자 두부를 냉장고에 넣었다가 월요일에 쓰려고 꺼내는데 다 으스러져버렸습니다.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 가져오긴 했는데, 저는 두부를 보신 사장님의 처분에 따르려고 합니다."


말을 1차 끝낸 후 가방에서 두부를 꺼내 보여드렸다. 두부를 보시더니 오히려 웃으시면서 말씀하신다.


"간수가 덜 들어갔나~~ 한여름에도 이런 일 없었는데... 바꿔 가요~"


"저는 혹시라도 사장님이, 사간 제 과실이라고 못 바꿔준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생각했는데, 이리 흔쾌히 교환해 주신다니 오히려 감사합니다."


고개 숙여 정중히 인사를 했다. 물건 팔 때와 같은 얼굴 표정으로 말씀해 주시는 사장님이 진정 고마웠다.


두부를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셔서는 아예 뭉개지지 않은 한 모마저 다 쪼개 버리셨다.


"아니 여름에도 안 그랬는데... 혹시 냉장고에서 꺼내놓지 않았나요?"

한 번 혹시나~ 하는 확인사살하시는 멘트였다.


"예 꺼낸 적 없었습니다. 믿으실지는 사장님 마음이시죠."


"ㅎㅎ 어느 것으로 가져갈래요?"


모판 두부와 얼음 물통에 담긴 두부를 가리키며 물으셨다. 김이 아직 올라오고 있는 모판 두부가 보여

"저는 모판 것을 가져가고 싶어요. 그런데 사장님, 제가 댄스를 하러 가야 하는데 돌아오면서 가져가면 안 될까요?"

"몇 시쯤 오시는데?"

"6시쯤 옵니다."

"그럼 그때 가져가요."

"감사합니다. ㅎㅎ"


재차 감사하다는 말을 하니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고맙지. 멀리서 들고 오게 만들었다고 펄쩍 뛰지도 않고, 사 가느라 다시 가져오느라 손님이 고생했지요. 착한 사람이 예쁜 행동을 하고 고약한 사람은 미운 행동을 하는 거야."


난 두부 두 모 다 교환받고 졸지에 착한 사람으로 인정까지 받았네.


댄스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들렀다. 사장님은 다정하게 물으신다.


"댄스는 무슨 댄스? 어디서 하는데?"

"라인댄스요. 조~기 주민센터에서 해요."

"나 같은 나이 든 초보도 할 수 있나?"

"그럼요. 언니들도 많아요. 초급반도 있고요."


시간까지 물으시며 관심을 보이시더니 휙 도는 흉내를 내시며

"이렇게 돌기도 하고?"

"예~~ ㅎㅎ 배우러 오세요~."


멀리 간다고 사각통에 담아주신다는 걸, "교환해 주신 것도 고마운데, 그것도 돈이에요. 그냥 비닐에만 담아주세요." 했더니 한 모씩 따로 잘 담아 묶어 큰 봉투에 쏠리지 않게 잘 담아주셨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많이 파세요~"하며 90도 인사를 하고 왔다.



돌아오며 난 나를 칭찬했다.

상한 듯한 두부 두 모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마음 졸이지도 않았고,ㅡ예전이라면 두부를 잘못 산 탓, 가서 바꿔야 한다는 번거로움, 괜한 언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등으로 내내 신경 썼을 것이다.ㅡ 사람을 미리 판단하지도 않았으며,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깊이 생각했다. 더 중요한 건 상대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나의 마음도 충족시켰다.

해야 할 말을 정중한 태도로 정확하게 전달했으며, 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상대의 생각을 존중해 주려고 했다. 주체와 별도로 의도하지 않게 생긴 일에 대해서만 집중해 감정의 불화 없이 유연하게 처리했다.


언행을 정중히 한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와 나 자신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 자신은 여전히 불완전하여 이런 일에도 늘 기도하며 나아간다. 구하면 얻는다는 성경말씀은 바로 이럴 때를 이른다.

나 자신의 방식을 버리고 옳은 방법을 구하면 잠깐이라도 나의 언행이 고와진다는 것. 하나님과의 잠깐의 접촉이지 않을까.


'ㅇㅇ야, 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 해도 되는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분별하는 일도 인간의 덕이며 도리인 것 같아. 참 잘했다. 부족해도 조금씩 배워나가자.'


'진짜 오늘 가는 말이 고우니 오는 말도 고왔네. 긴장한 일이 아주 쉽게 해결됐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