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 13... 허무와 극기

by 소망

아침을 보시락거리고 나면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어제와는 다른 낯선 공기가 온 피부에 와닿는 듯하다. 깊은숨 한 번에 가끔은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인 듯 심한 착각 속에 머물다 온다. 폼롤러에 발을 올려 느껴지는 통증을 견디며 굴려본다. 쉬어주는 발바닥을 마주 대고 눈을 감으면 멀리서 새소리가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마냥 들려온다. 잔 외부 소리들이 들리지만, 그는 멀리서 들리는 소리일 뿐, 내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나대로 소리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꽤나 조용하고 안정적이다. 이럴 때가 나는 좋다. 좀 더 상상하면, 저 멀리 떨어진 숲 속에서 들려오는 숲의 소리들이 있다. 여긴 도심이니 들릴 리 없지만, 차바퀴들의 구르는 소리가 중첩되어 바다물결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걸러서 듣는 능력은 나에게 있다. 도심의 소리를 자연의 소리로 치환하는 것도 나의 능력이다.


언제나 숲으로, 바다로 달려갈 수 있을까?


ㅡ 아침 일상 생각 ㅡ




어느 날 문득 깨어 올라온 생각이다.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써져 빠른 시간 내 술술 썼는데, 이상하게 맘에 든다. '허무와 극기'



허무에게는 많은 친구가 있다.

어릴 때부터 알던 친구도 있고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자신이 친구 하자고 직접 찾아가 사귄 친구도 있고 가끔은 다가오는 친구도 있다. 허무는 생각했다. '마치 모든 사람이 친구인 것 같아.'

친구는 많지만, 친구들 중에는 자신을 좋아하는 친구보다 자신을 싫어하는 친구들이 많다.

자신이 만나자 연락하면 이런저런 핑계로 거부하고, 놀러 가기라도 하면 피해 달아나기 일쑤다. 허무도 친구들의 그런 태도를 보면 허무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몇몇 친구들은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함께 놀아주기도 한다.



소망은 조용한 친구인데 늘 웃으며 맞아주고 함께 차를 마시며 속 마음을 이야기한다. 소망을 만날 때면 허무도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아 말해서인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열정이는 부잣집 딸인데 어찌나 활달한지, 허무는 열정이만 만나면 소심해져서 조용히 지켜볼 때가 많다. 허무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늘 씩씩하게 제 할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열정이는 허무를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허무는 열정이랑 노는 건 재미없었다.


두 친구 외에 허무를 반겨주는 신실이, 사랑이 등 여럿의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과는 변함없이 우정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이 친구들을 만날 때 특별한 재미는 없다. 그런데 극기는 완전히 다른 친구였다.


극기랑 만나면 늘 이벤트가 있다. 그래서 극기를 만나러 갈 때는 허무의 마음도 늘 설렌다.

'오늘은 어떤 이벤트를 하려나?...'


극기를 만나면 함께 마을을 달린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면 절로 힘이 나고 즐거워진다. 그러고는 햇빛이 부서지는 강에서 물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럴 때 허무도 자신을 잊고 시간을 즐긴다.


어떤 날 극기는 지하철역 앞에서 만나자고 한다. 그런 날에 맛집을 찾아간다. 맛있는 요리를 먹을 때마다 허무는 극기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에 살맛이 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오늘은 극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편한 옷차림으로 나오란다. 허무를 불러주는 유일한 친구 극기가 참 좋았다. 후다닥 나갔다. 오늘은 등산을 하잔다. 극기는 편의점에서 생수 두 병을 샀다. 둘이는 천상산에 올랐다. 오를 때는 땀이 나 불편했다. 허무는 자꾸 주저앉아 포기하고 내려가자고 했지만 극기는 허무의 손을 잡아끌며 고지에 올랐다. 고지에 오르니 산 아래 펼쳐진 마을이 아름다웠다. 극기가 건네준 생수를 마시니, 정신이 맑아지고 온몸이 쩌릿했다. 살아있음이 행복했다.


허무는 극기를 너무나 사랑했다. 극기도 허무를 사랑했다. 허무와 극기는 죽을 때까지 함께 하며 삶을 즐겼다.


허무는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극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