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실마리를 보다... 3편/이별

아련한 기억 속 그리움

by 소망

감정은 감정을 넘고 넘어 초감정으로, 초감정(meta-emotion)의 근원을 찾아 먼 곳으로 향했다.


까만 밤, 골목의 집들 사이로 희미하게 스며 나오는 불빛에 의지해 떨며 웅크리고 앉은 두 아이가 보였다. 어린 동생과 그를 안은 언니. 언니의 감정 덩어리는 외로움이었다.




불 꺼진 방, 퉁퉁 부어 잘 떠지지 않는 눈, 그때도 곁에는 까만 밤만이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자잘한 소리들은 이미 의식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둠만이 나와 대면하고 있었다. 그 어둠에 묻혀 잠들고 싶은데 잠은 달아나고 어디론가 끝없이 향하는 내 의식만 보였다.

그날 나는 수술한 눈을 돌봐야 했다.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하필이면 그날 잡다한 번뇌가 들끓더니 초감정의 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늘 헤어짐 앞에서 슬펐던 이유.


잠재되어 있던 기억 속 장면들이 들쑥날쑥 파편처럼 떠올랐다. 어떤 장면이 주연이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다.

칠흑처럼... 어두움이 그런 건가. 달빛만이 성성한 밤에 담요인지 뭔지 둘러쓰고 동네 언니를 쫓아다녔다. 오빠들이 깡통에 불을 넣어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연탄불에 개구리 뒷다리 굽는 오빠들. 연탄불에서 피어오르던 연기와 구수한 냄새.

나뿐 아니라 그들의 정확한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구슬 주머니를 들고 서있고 오빠들은 구슬치기를 한다. 주로 떠오르는 장면은 언니와 오빠가 함께 있던 어린 시절이었다. 떠오르는 것들을 보며 난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이 그냥 흐르는 것이다. 울려고 우는 것이 아니다.


의식은 더 또렷해지고 잠을 자려면 감은 눈 속 까만 세상에 하얀빛이 아른거리며 또 다른 의식을 불러오곤 했다. '안 돼. 자야 해. 눈물도 안 돼. 눈이 아물지 않을 거야.' 의식 속에서 계속 현실도 걱정하고 있었다.


' 아~ 그리움이구나.'

떠오르는 장면들 속에서 어린 나를 찾으려고 애썼지만, 찾지 못했다. 찾으려면 어릴 적 사진에서 본 내 얼굴을 합성해야만 했다. 올라오는 그리움에 추운 겨울 눈보라 치는 벌판에 서있는 듯한 외로움이 함께 몰려왔다.

기억 속 모습은 즐거웠던 일이었고, 그 장면 속에서의 어린 나는 보통의 어린아이들이 느끼던 일상적 감정이었을 텐데... 현실의 내 감정은 오싹하도록 외로운 그리움이었다.


내게서 다 떠나갔다. 늘 함께 놀던 언니 오빠. 동네 형들한테 구슬 다 잃고 입이 댓 발 나온 채 들어온 오빠. 그럴 때 늘 구원 투수처럼 나갔던 언니. 구슬 주머니 들고 졸졸 뒤따르던 나. 모두가 사라졌다.


의식 속을 헤매며 계속 찾아댔다. 어느 날 언니가 눈앞에 안 보였다. 또 어느 날 의식에서 오빠가 지워졌다.


어린아이 마음속에 있던 사소한 기억이 그리움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훌쩍 커버린 나. 과연 그들은 어디 갔을까. 왜 나한테 말도 없이 떠나간 걸까.


'ㅇㅇ야, 언니는 말이야~ 여차여차해서 어디 다녀올게.' 하거나. '엄마는 이러저러해서 떠나셨어.'라는 식의 한마디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의 또 한 기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병원차가 우리 집 앞에 멈췄다. 멍한 눈으로 응시하던 앰뷸런스는 이별... 그것은 이별 뒤에 온 사별이었다.



To be continued~



에필로그


기억 속 즐거웠던 장면이 왜 그리 그립고 왜 그리 외로운 거였을까. 이유는... 다 떠났기 때문이다.


그날 밤새도록 떠올랐던 장면들. 그 장면 속 사람들, 특히 언니와 오빠, 그 행복했던 추억들, 그리고 엄마... 모두가 내 고통체의 하나인 그리움임을 알았다.


난 지금껏 오열한다. 아직 내게 남아있는 감정이 이토록 큰 것인가. 못난 건가. 앰뷸런스. 이별 만으로도 난 너무 슬프다.


굵은 물방울이 뚝뚝 가부좌 튼 발뒤꿈치에 소리 내며 떨어진다.


그동안 내가 한 말은 거짓이었나. 이젠 괜찮아져서 울만큼 울고 다 털었다고, 한 말들이......

'괜찮지 않았구나. ^^ 'ㅇㅇ야, 다 풀고 가자.'


난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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