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시야에 부르는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내려온 에스컬레이터 쪽을 흘끔거리지만 뛰어내려오는 사람은 없다.
다른 칸으로 조용히 오르는 한두 명의 승객만 있을 뿐이다.
아가씨는 차에 들어섰다. 그 찰나에 또다시 들려오는 소리.
"저기요~~ 저기요~~"
전동차 안에 발을 들인 이 아가씨, 들려오는 소리에 계속해서 문밖을 쳐다보며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나갈까 말까 망설이는 듯하다. 짐짓 자신도 스스로의 행동이 우스운 걸까? 아니면 외쳐 부르는 어떤 남자의 사연이 자신과 관련 있으면 어쩌나 의심하는 걸까? 걱정하는 걸까? 알듯 말듯한 야릇한 미소가 아가씨의 얼굴에 스쳐간다.
조용히 앉아 창밖과 아가씨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는 나의 마음이 들썩인다.
'뭐야?'
'누구지?'
'아가씨는 어떤 선택을 할까?'
전동차의 문이 닫히려 하는 순간까지 계속되는 소리. '저기요~'
전동차 문 옆에 빈자리가 있음에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서서 여전히 망설이더니,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서 아가씨는 돌아섰다. 그러고는 자리에 앉았다.
드디어 문이 스르르 닫혔다.
내심 기대해 보았다. 누군가 문이 닫히는 순간 뛰어들어오지 않을까 하고...... 그러나 기대한 일은 일어나지 않고 차가 떠나는 뒤로 '저기요~'하는 소리도 떠나가고 있었다.
볼이 빨갛게 익은 긴 머리 아가씨가 가방을 연다. 이번에는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가방 안을 살핀다. 뭔가를 떨어뜨렸나 생각하며 살피는 듯하다.
아가씨의 얼굴이 빨갛게 물든 것으로 보아 급히 뛰어내려온 것 같다.
6호선 플랫폼까지 내려오려면 계단을 4번 이동해야 한다. 그 사이를 뛰면서 뭔가 흘렸거나, 어떤 사연이 있을 수 있다.
나도 계속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가씨의 행동과 '저기요~~'하는 커다란 음성.
나는 부동자세로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내가 계속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아가씨는 알았을까.
'에잇, 도대체 뭐야? 괜한 일로 저 아가씨 마음만 불편하겠다!'
가방 안을 한참 살피던 아가씨, 별일 없는지 가방을 닫고는 엉거주춤했던 자세를 고쳐 앉는다.
전동차는 그 사이, 다음 역에 도착했다. 그 아가씨는 안정되었고 나의 들썩이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전동차의 문이 열리고 닫힐 때까지 그 짧은 순간의 일이었다.
상황은 종료되었으나... 생각을 접을 수 없었다.
그 짧은 시간에,
누군가의 이름도 모르고 부르던 그 남자.
자기를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아가씨와 또 있을 누군가.
그걸 보고 있는 나.
적어도 몇 사람의 수많은 생각들이 지하철 역사 내에서 교차되고 파생되어 부딪쳤겠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플랫폼으로 내려오는 사람이 많았다면 그 아가씨는 자기가 아닐 거라 확신하고 신속하고도 편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두 명만 오르락내리락 한 상황에서 계속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니, 내려서 확인을 해야 하나 마나 하며 움짓거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불확정의 상황에서 사람은 자신이 믿고자 하는 대로 가려는 확증편향의 기질이 있기 때문이다.
'불특정의 누군가를 부를 때, '저기요~~'라 부르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 아가씨가 내려오던 그 시각에 내가 플랫폼으로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에 있었다면 나도 주뼛거리며 차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전동차는 한 번 떠나면 끝이니까. 중요한 무언가를 흘렸다면 큰 낭패니까 말이다.
'검은 코트 입은 긴 머리 아가씨, 교통카드 떨어졌어요.' 또는,
'앞에 가는 검은 코트 입은 긴 머리 아가씨, 핸드폰 떨어졌어요.'
이렇게 외쳐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남자는 계속 '저기요~~'만 반복했다. 녹음된 소리를 켜 놓은 것도 아닐 텐데.
그것은 누가 왜 외친 것일까. 그 소리를 들은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외출하고 돌아와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그는 누구를? 왜? 불러댔을까 무지 궁금하다.
사고사 목격 시, 신고자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로, 어떤 상태인지 등을 정확히 워딩 해줘야 하는 이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특수하고 필수적인 상황이 아니라도 이런 경우, 누구를 부르는지, 왜 부르는지 정도 함께 소리쳐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가 주로 기억나지 않을 때 하는 말 '있잖아요~ 그거~ 거시기~' 등은 주의해서 사용해야겠다.
그가 부른 '저기요~ ' 에 반응하며 돌아봐야 했을 누군가는 진짜 누구였을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