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실마리를 풀어가다... 9편/ 퇴직

온전한 탈피를 위해 교단을 떠나다

by 소망

상태가 호전되어 갈 즈음, 의사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ㅇㅇㅇ님의 경우는 드물게 착한 조울증입니다."


'정신적 증상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가 착한 게 있을까...?'


"조증 기간에는 좋은 에너지를 일하는 데에 다 쏟아내고 긴 울증의 기간이 오면 잠수 타는 그런 조울증입니다. 대개 연예인들한테서 볼 수 있는데요. 영화 한 편 열심히 찍고 잠수 타는 연예인들 중에 그런 유형이 많습니다. 조증이라도 밝고 유익한 에너지죠."


'그나마 착한 조울증에, 밝고 좋은 에너지를 가졌다니 다행이긴 하네요. 그도 위로로 받아야지.'

지금이면 이리 생각했겠지만, 머릿속 끈이 느슨해진 상태라 이도저도 별생각 없었다.


나의 경우, 조증 기와 울증기의 상하 폭이 깊고 가로 폭도 넓게 나타나는 게 특징인데, 일에 에너지를 다 쏟고 나면 정작 울증 기간에는 에너지 고갈로 심신이 모두 힘들다는 말씀이셨다. 그러니 자신의 신체리듬을 알고 복직 후에는 에너지 분배를 잘해 보라는 뜻에서 해 주신 배려의 말씀이었다.


그도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었다. 난 팔팔할 때 엄청 에너지를 쏟아 일을 했고 까라질 때는 남모르게 엄청 고생했다. 그것의 원인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무척 궁금하긴 했으나, 혼자 생각하기로 했다. 나의 목표는 약을 최대한 빨리 끊는 것이었다.


머릿속이 완전히 총명치는 않은 상태이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었다. 혼생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나는 교사'라는 책무성이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긴 여름이 지나고 병휴직도 끝났다. 새 학기에 정규 교사의 내 자리가 아닌, 휴직 교사의 남은 기간을 채우는 복직 교사가 되었다. 이런 증상으로 대타의 자리도 과분했다. 32년 중 딱 한번 교과 전담을 했다. 늘 담임으로 한 학급을 책임져 왔는데... 나의 모양새가 이때는 참 초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사 풀린 머리로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학급 아이들을 생각하며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매일을 하루같이 긴장 속에 보냈다. 그래도 약이 스트레스를 덜어 준 건 분명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재택근무도 가능해져서 좀은 수월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전의 나와는 여전히 다른 상태였고 학급 경영과 업무 처리에 대한 자신감도 뚝 떨어졌다. 이도 순리인가 싶어 곧 퇴직을 결심했고 수순을 밟아갔다.


늦가을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연한 코발트빛 하늘을 바라보며 매일 걸었다. 오후에 학교 운동장을 걸으며 오랜 시간 몸담았던 교직을 떠나야 한다는 서운함을 눈에 담고 마음을 비워갔다.


마지막 아이들을 진급시키고 2021년 2월에 32년 간의 교직생활로부터 영영 떠나왔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끊으니 나 혼자 걷고 산책하며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무엇을 해야 하나... 처음에는 생각 없이 걸었다. 겨울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매일 걸었다. 밝은 낮 하늘은 우울증 약으로 여전히 나 같지 않은 나를 생각나게 해서 좀은 슬프기도 했다. 검은빛 짙은 코발트색의 밤하늘은 무념무상의 시간을 허락했다. 매일 걸으며 홀로 생각이 많아지니 내가 할 다른 일이 있는 것만 같았다. 우선은 완전히 낫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약물 치료는 계속하고 있었으나, 약이 줄고 바뀌며 서서히 가벼운 생각들이 하나 둘 올라왔다. 급한 불은 끈 상태였고, 여전히 약을 처방받아먹기에 우울 증세는 사라졌다. 감정의 기복이 없는 맹맹하지만, 나름 안정된 상태가 주욱 지속되었다.


4월, 드디어 1년 3개월 만에 약을 끊었다.


이제 나를 위해 뭔가를 해야 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여 판단하기에 충분했다.


마음공부를 위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읽기를 즐겨하지 않던 나였는데, 남편의 영향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시작한 책들이 죄다 영성과 깨달음, 마음 챙김에 관한 책, 신앙서적 등이었다. 심리서 등도 물론 있었다. 심리 상담 온라인 교육도 받았다. 세상에 태어나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가 아무거나 주워들으며 배워가는 과정 같았다. 완전히 나를 재건할 계획을 세워야 했다.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날 마음 챙김과 약해진 몸을 위해 ㅡ그 당시 족부질환과 오십견을 계속 앓고 있어 요가와 댄스도 멈춘 상태였다.ㅡ 가벼운 스트레칭부터 시작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루틴을 실행했다.


아침 묵상을 시작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읽으며 듣는 아침 묵상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근력이 없고 여기저기 아픈 구석이 많았던 터라ㅡ그런데 이상하게도 약물 치료 때는 통증도 못 느끼고 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스트레칭부터 시작했고 유튜브를 뒤져 내 증상에 맞는 운동을 찾아갔다. 무조건 따라 해 봐서 효과가 있으면 루틴용으로 하나하나 추가해 갔다. 무릎 강화 운동, 코어 근력 강화 운동, 전신 근력 운동, 스트레칭 등의 동작으로 구성했다. 처음에는 30분부터 시작해서 익숙해지면서는 2시간까지 아침 운동을 매일 했다.


낮엔 꼭 햇빛을 쬐며 산책했다. 산책하며 유튜브를 통해 성경 말씀 외 심리학과 철학 강의 등을 들었다.

이때 만난 분이 김기석 목사님이셨다. 그분의 영상을 무작위로 매일 몇 시간씩 들었다.


오후에는 책을 읽고 저녁식사 후에는 천변 따라 밤하늘을 보며 또 걸었다.


자기 전에는 침묵하는 명상 시간을 가졌다.


퇴직 후 약을 끊은 후 만들어 지금까지 계속해 온 루틴이다. 명상은 일상생활 중에 수시로 하는 묵상이 되었다.


약을 끊으니 제일 먼저 찾아온 증상이 불면이었다. 이때부터는 단골 ㅡ갑상선으로 늘 진료받는 ㅡ병원에서 수면제 처방을 받아 상비했다. 수면 보조제를 이것저것 구입해서 복용했다. 보통 때는 보조제를, 잠을 거의 못 잘 때는 수면제로 적당히 조절하였다. 불면증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 노력했다.


그리고 우울증 약을 끊고 다시 찾아온 증상이 위장 장애였다. 위가 무력한 증세는 젊은 날부터 있었는데, 체질이 소음인이라 소화력도 약했다. 서울대 병원에서 4개월간 치료 약을 처방받아 상비하고 증상이 심할 때마다 복용했다.


특별히 큰 병은 없었지만 우울증 치료 전처럼 불면, 위장장애, 알 수 없는 통증 등이 다시 찾아왔다. 그러나 그동안 공부하며 노력해 온 덕인지 우울에 잡혀 먹히지는 않았다.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경계에는 무방비였고 특별한 대책이 없었다. 그리고 타인은 나의 내면을 모르기에 나를 정상으로 여겼지만, 나의 내면은 여전히 취약했고 마음 근력이 없어 힘들었다. 약을 끊으니 옛 증상이 떠났던 친구처럼 다시 찾아온 것이다.


우울증으로 다시 치료받지 않으리라는 의지 하나로 아슬아슬 버텨갔지만, 약을 끊은 지 10개월쯤 지나자 으레 기다렸었던 것처럼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To be continued~



에필로그


나의 루틴은 특별한 날 외에는 4년째 꾸준히 실천했다. 지금은 건강해져서 정상적으로 대외 활동을 한다. 늘 하던 루틴 중 아침 묵상과 운동ㅡ댄스, 걷기 근력 운동ㅡ 그리고 짬짬이 독서는 꾸준히 하고 있다. 추가된 것이 있다면 지금 내 생활의 큰 비중은 글쓰기이다. 나의 큰 장점이 꾸준함인데, 우울증 치료 후에는 다른 일 하나 안 하고 오로지 내 완전한 치료를 위해 노력했다.


코로나 시기를 맞으며 중단했던 댄스를 하고 싶어서 몇 친구와 주 1회 만나 댄스도 즐겼었다. 그런데 우울증 약을 끊은 후 다시 예전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는데 그것을 단지 요요현상처럼 여겨 6개월간 방치했다. 이상하게 살이 빠졌다. 이때 7kg이 빠지면서 무척 힘들었다.

나중에 갑상선 약 처방받으러 갔다가 혈액 검사 후 알게 되었다. 저하증으로 먹었던 호르몬이 과다가 되어 항진이 되었다. 호르몬제를 반으로 줄이니 다음날로 증상은 호전됐다. 작은 알약 한 개의 위력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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