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실마리를 풀어가다... 10편/ 위기는 기회

다시 찾아온 위기에서 세상의 안목이 틔다

by 소망

몸은 우울증 치료 전으로 돌아가 슬슬 다양한 증상들로 소소하게 나를 힘들게 했으나 나름 조용한 일상을 지내며 마음은 안정을 찾아갔고 또 해가 바뀌었다.


가까운 친구와의 만남뿐, 일체의 다른 모임이나 활동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24시간은 오로지 나를 돌아보고 묵상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수다를 좋아하고 미주알고주알 말이 많았던 내 입에 거미줄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도 해 봤다.


아침을 깨는 말씀 묵상, 침대 위 운동, 지난해 호르몬의 마법으로 빠진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간헐적 단식을 실천했다. 간단한 집안일, 독서와 산책, 걷기 등의 매일 프로그램은 마음의 안정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봄, 다시 커다란 경계가 찾아왔다. 어린 시절의 상처들은 어른이 된 내게 과거가 아닌 현재였다. 나를 옥죄고 있던 과거의 상처를 다 직면했고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로 끝나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애정 의존형 성향과 편협된 집착 등이 빚어낸 지난 과오들이 나의 목을 죄어왔다. 가장 힘든 것이 인간관계라는 것도 이때서야 알게 되었다.

나의 과오는 의존으로 다른 사람을 너무 힘들게 한 것이다. 진정 소통하고 배려하는 방법을 몰랐고 잘못 실천했다.


다시 심한 불면증이 왔다. 밤엔 잠이 안 들고 잠깐 한두 시간 잠들었다가 2시나 3시만 되면 매일 깼다. 진짜 긴 불면은 이때 겪었다. 보조제를 먹어도 서너 시간 자면 꼭 깼다. 전처럼 번뇌가 있었으나 양상이 달랐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의 나, 그리고 내 실체를 알 수 있는 단서의 꿈, 존재의 실체 등의 알 수 없는, 생각도 아니고 완전 꿈도 아닌 그런 상태가 한동안 지속됐다. 그리고 달라진 것은 나의 자아가 일하고 있다는 느낌. 오히려 첨예한 의식이 느껴졌다. 어떤 흐름에 몸 싣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이때부터 수면제보다는 '이 몸을 재우지 말자'를 선택했다. 보조제는 이용했으나 수면제는 거부했다. 남아 있는 수면제는 오래 밀린 잠에 매우 피곤해지면 한 번 복용하고 실컷 잘 때 이용했다. 나를 살리기 위한 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만 했다. 그만큼 나의 마음근력도 좀은 향상했다.


우울증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눈물은 철철 흘렀다. 이번에 내 지난 과오가 처절하게 반성되어서였다. 나의 애정표현은 모두가 집착이었고 나의 이기심이었음, 나를 보호하려는 방어책, 결국 나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할 수 없었고, 사랑이란 거론조차 하지 못할... 사랑에 무지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큰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가슴이 쪼개지듯 너무나 아팠다.


일 주간을 매일 밤마다 거의 잠을 못 자고 울고불고하다가 결국 찾은 게 금강경이었다.

세상살이에 대한 지혜가 없었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신랑에게 매달려 권해 받은 거였다.

이후 새벽마다ㅡ아니 밤중이었다ㅡ 매일 읽었다. 확확 들어오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진짜 모를 내용들이 있었다. 혼자 읽는데도 얼굴이 붉어지고 창피함을 느끼게 하는 가르침도 많았다. 나의 부족함이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매일 두세 시간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졸음이 왔다. 그러면 잤다.

뭔가를 알고 깨닫는 데는 진짜 긴 시간을 요한다. 한두 번? 어림도 없다. 금강경 해석본을 읽어도 그 뜻을 아는 데는 10번 이상? 진짜 읽는다는 것이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고 깊은 뜻이 가슴에 스며들어야 비로소 읽는 것임을 금강경을 통해 알았다. 이때서야 난 독서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독서지도도 했던 교사였던 내 나이 57세. 얼마나 한심했던가.




산책하면서는 늘 눈뜬 채 깊은 묵상을 했다. 가르침을 곱씹고 간절한 기도를 했다.


'사랑이 어떤 건지 알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요? 예수님의 눈으로 본다는 건 어떤 건가요? 예수님의 가슴과 그 눈을 주세요.'


이후 걸으면서 늘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사랑의 눈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난 이때 내 가슴에 보편적 사랑이 없구나 ㅡ내가 어리석음에 늘 착각하고 살았다는 증거... 보편적 사랑을 운운했다니 말이다.ㅡ 느꼈고 예수님이 새롭게 다가왔다. 예수님과 나의 차이는 다중의 거대한 우주와 보일 듯 말 듯 한 티끌의 차이였다. 슬펐지만 인정해야 했다.


낯선 타인에 대한 사랑은 정말 요원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가족에게로 시선이 돌아왔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지으신 분의 뜻이고 순리라는 생각을 하며 점차 순종의 의미를 깨치게 되었다.

'가족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남을 사랑하려 하니? 이 못난 것... '

우주의 어떤 힘이 나를 꾸짖는 것 같았다.



그 후, 나의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음식을 만들고 줄 때조차 마음의 변화를 느꼈다. 이런 사소한 일에서도 슬프도록 뼈저린 아픔을 느껴야만 했다.

'나란 인간이 이런 애였군!'

지난 시절의 나를 부인하고 싶었다.

보이는 모습이 아닌 내면, 그뿐 아니라 과거를 바꾸고 싶었다. 바꾸지 못하니 부인이라도 하고 싶었다.



To be continued~




에필로그


예전의 나... 새엄마를 잘 따른 나를 보고 이미 고인이 된 근친들은 ' 쟤는 좀 모자란 아이가 아닌가' 생각하셨다. 어리석고 어리숙하다는 말의 뜻을 곱씹게 된 것도 50대 이후이다. 나의 젊은 날, 나는 일 외에서는 늘 부족한 사람이었다. 내 자격지심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내게 벽창호라고 했던 선배가 직접 그랬었다.

"넌 일할 때는 굉장히 똑똑한 것 같은데, 다른 때는 맹해 보여."

맹한 것은 멍청해 보인다는 것이었지. ㅎㅎ


또 다른 선배는 어리숙해 보인다고 했다.


난 아무렇지 않았지만, 이후 생각하니 그것은 좋은 뜻이 아니었다. 50대 보고 그러다니... ㅠ


근친들도 가족들도 알게 모르게 내 부족함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난 그만큼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느낌으로 알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생각 패턴이 어떠했을지를 충분히 알게 되었다. 살짝 화가 나기도 하지만,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누굴 탓하랴.


이후 부끄러움에 아는 사람을 더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인정하고 사과하고 모르는 척 넘어갔다.

'앞으로 제대로 하면 되지.' 했지만, 제대로 하려면 아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린다는 것까지 알아야 했다.


나의 장점은 꾸준함. 꾸준함으로 버텨왔다. 나를 칭찬해야 했는데, 자신에게조차 존중받지 못한 자신이 참 애달팠다.


지금껏 꾸준하게 공부해오고 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피를 바꿔서라도 바꾸고 싶다. 는 말에, 과거의 나를 부인하고 싶다.'라는 말에 ㅇㅇ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나는 나에게 이중 가해를 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PS- '연재 > 실마리를 보다'는 7편, '실마리를 풀어가다'는 3편으로 마무리짓습니다. 그러나 변화하는 제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실마리를 풀다 보니 그 흔적들이 많이 보입니다. 과거의 흔적들과 과거의 영향이 가져온 현재의 모습을 목요일 6시 브런치북 '연재> 풀린 실마리가 남긴 흔적들'로 자서전적 에세이를 이어가려 합니다. 글이 여전히 부족하지만, 진정 읽어주시는 한 분을 위해서라도 재고하며 심혈을 기울여 써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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