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의 맹각 그리고 오류의 존재
무주의 맹시(盲視)
고릴라 실험으로 입증된 인식 부재의 현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주의 맹시를 검색하니
[대상이 시야 속에 들어 있지만, 주의가 기울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사물을 간과해 버리는 현상.]
[심리학자 아리엔 맥, 어빈 록 박사가 1992년에 실시한 '지각과 주의에 관한 실험'에서 발견됐으며, 하버드 대학의 대니얼 사이먼스, 크리스토퍼 샤브리스 박사가 1999년에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을 통해 입증해 낸 현상이다.]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아침, 약속이 있어 서둘러 준비할 때였다.
간헐적 단식을 하는 나에게는 좀 이른 시각이지만, 움직여야 하기에 토마토 하나를 씻어 들었다. 다른 때라면 접시에 썰어 놓고 외출 준비하며 오고 가는 중에 하나씩 집어먹었는데, 그날은 손에 들고 입으로 베어 먹으며 움직였다. 다른 때라면 준비 중에 손을 써야 할 때는 어디엔가 놓곤 했었다. '어느 순간 토마토가 어디에 있지?'
손에 들고 베어먹은 기억은 있으나 그 이후 전혀 기억이 없다. 그저 분주히 움직이다가 토마토가 내 손에 없음을 인식했고 당연히 어딘가에 놓았겠지 생각했다. 그리고 마저 먹어야지 하고 찾아댔다. 그런데 그 빨간 토마토는 보이지 않았다. 입안은 서너 번 베어 물어 먹은 느낌밖에 없는데 토마토는 없다. 분명히 난 다 먹지 않았다고 믿었다. 배의 포만감도 다 먹지 않았다 알려주고 있었다. 냉장고와 싱크대, 거실과 식탁, 화장대 등 하물며 내가 이동했던 화장실까지 다 훑었다. 내 인지력을 의심해서 무심코 침대 위에? 하며 깔아뭉개면 어쩌냐는 생각으로 이불도 들쳐댔고, 화장실 안 정리장까지 열어 보았다. 우스운 것 같지만, 난 심각했다.
헐~~ 을 지나 헉~~~
'그럴 수 있지.'라는 한 편의 생각으로 심각하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입과 배를 점검하며 생각했다.
'어 분명히 한 개 다 먹은 입과 배가 아닌데...... '
"내가 먹던 토마토가 없어졌어. 찾아주세요."
두 식구에게 큰 소리로 알렸다. 먹다가 어디다 잠깐 놓은 것 같은데 찾을 수 없다며 혹시 보이면 나한테 달라고 부탁했다.
약속이 있으니 일단 찾으면 냉장해 달라고 부탁까지 하고는 양치까지 마치고 외출했다.
토마토는 어디에 있는 걸까?
토마토 어디 두었지?
나는 나를 믿지 못했고 믿을 수도 없었다. 먹었다고 인정도 못했고, 안 먹었다고 할 수도 없었다.
인식된 감각이 진실일까?
생각이 진실일까?
현상이 진실일까?
그러나 인식된 감각과 생각은 한 팀으로 다 먹지 않았다고 하고 외부현상은 토마토는 없다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다 놓았는지는 인식 밖이다. 이 인식의 오류, 차이는 왜, 어디서 오는 걸까?
그러나 적어도 두 사람, 아니 나까지 세 명이 찾아본 결과 현상은 '토마토는 없다'였다.
나는 내내 '토마토 어디 갔을까?' 생각했다.
지금껏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분명 내 입만이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만 먹어도 배가 살짝 부를 시간이고 양이었는데 전혀 아니라고 하니 더 혼란스러웠다.
그때 무주의 맹시가 떠올랐다. 진짜 감각과 인식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믿을 수 없다는... 오류 투성이라는...
그러면, 이 미각은 뭐란 말인가?
무주의로 인한 맹미. 딱 고거였다.
맹시만이 아닌 맹미.
그뿐일까?
맹청도 있을 수 있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니까 말이다.
맹후는 없으랴?
감각 발달에 따라 강한 것만이 우리 감각을 지배한다. 인식과 협조까지 해서 여린 감각뿐 아니라 이 인식능력 마저 혼란스럽게 만든다.
'무주의 맹각'이라 할 것이다.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까지 감각과 행동, 생각 의식 등 모든 것이 없다는 반야심경의 지혜가 진짜였나?
지금은 그 토마토를 입과 배가 다 받아들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절대로 고집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 인간의 미련과 고집은 여직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 토마토 어디로 갔지?'
그리고는 하하하 웃는다.
치매가 오고 있다고 해도 지금은 웃으련다. 하하하.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나의 의식은 궁금해한다.
'진짜 ~ 말이지. 내가 먹던 그 토마토 어디에 놓았을까?... '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주의하지 않아 기억에 없을 뿐. 경험자아가 하는 일은 하루 수만 가지일 수 있고, 그 수만 가지의 경험 중에 기억자아가 저장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서 특별한 기억의 소유자들이 스캔한 모든 것들을 기억하는 것을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이지는 않죠. 일반의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와 감각이 경험하는 것을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강한 자극만이 기억으로 남는 것이죠. 아니면 행위의 포괄적 기억 개념만 남습니다. 예를 들면, 토마토 먹으며 움직인 과정을 다 기억 못 하고 '토마토를 먹었어. 외출 준비를 했어.' 이 정도의 기억 말입니다.
이렇게 허술한 인식 체계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인식한 바가 진실이며,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그 대표적 사례죠.
확증과 편향은 너무나 강한 성질이라 긍정보다는 부정의 예로 더 사용됩니다.
사람은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부조리를 안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 아닐까요? 저는 그를 오류라고 표현합니다.
온전하지 않은 것을 강하게 믿고 따르며, 강요하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돌아가는 지구와 윤회의 생 속에서 인간의 생각은 늘 오류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습니다.
by 소망
PS- 저는 불교도도 아니고 기독교도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입니다. 언어는 언어일 뿐이고요.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