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기에 그 연민조차 가련하다
가련한 인간의 연민
난 가끔 생각하고 그려본다.
유대인들이 부정한 여인을 끌고 와 성난 동물들처럼 으르렁거리며 손마다 돌을 쥐고 금방이라도 쳐 죽일 듯 한 그 장면.
그리고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여야 한다는 성난 사람들 곁에 웅크리고 앉아 땅에 뭔가를 쓰시던 예수님의 태도. 그 마음에 접속해 본다.
사람들의 성난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버시려 하심이었을까.
지혜의 궁리이셨을까.
아님, 부정한 여인과 성난 인간들에 대한 연민이셨을까.
님의 마음에 접속하며 나도 가만히 그 곁에 쪼그리고 앉아본다. 그리고 하릴없이 의미 없는 뭔가를 땅바닥에 끄적여본다.
연민...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
슬픔이 올라온다.
사람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무상함.
생로병사의 고해에서 끊임없는 숨의 윤회로 죽고 살고를 거듭하다, 시들어가는 스스로의 육체를 바라보며 죽음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존재. 그러기에 너무나 가련하고 불쌍하다.
나 이외 누군가를 그런 마음으로 바라본 적이 있는가?
'너는 나보다 더 가진 자. 나보다 훨씬 잘난 자.'가 아닌
'너도 아프고 늙어가는구나. 아픔과 시련이 있었겠구나.'
'너도 언젠가 죽어 없어지겠구나.'라는 마음으로 바라본 적이 있는가?
본인조차도 연민의 대상임을 모르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죄를 탓하기 전, 연민의 눈으로 보아주는 자비가 없음에 예수님의 마음이 슬펐을 것 같은데...
"죄 없는 자가 먼저 그 여인을 돌로 쳐라."
예수님은 모든 인간은 어쩔 수없이 알게 모르게 죄를 짓는 존재임을 아셨기에......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성난 사람들이 힘이 빠져 돌아가고 남겨진 부정한 여인에게 남긴 말씀에도 연민이 묻어있음을 본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아시는 예수님이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허탈함에서 건넬 수 있는 말씀. 가능한이다. 내게는 절대 죄짓지 말라는 말씀이 아닌 가능한 죄짓지 마라시는 말씀처럼 들린다.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나도 연민의 대상이며 타자들도 모두가 연민의 대상임을 말이다.
가진 자들의 선의일 수 있는 동정도 연민의 유사어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마저 인간 동정의 행위로 보아 사망을 말한 니체의 견해를 생각해 보라. 연민은 동정이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동정이 아닌 연민에서 비롯된 사랑이다.
공감의 허울... 위선
난 스스로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상담심리, 회복 탄력성과 공감적 언어소통 기술 등에 관한 다양한 것들을 공부하기도 했고 감정이입을 잘해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였다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한방에 날아갔다. 스스로를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시켰다.
인간의 자아는 자기중심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누구든 자신을 잘 들여다보라. 누가 있는지.
내 안에 너 또는 그가 들어 있는가?
떠올랐다 사라지는 생각에는 너도 그도 있을 수 있지만, 깊이깊이 들여다보면 너와 그를 생각하는 이면에 자신으로 가득 찬 我가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자아는 늘 나를 감싸고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를 발휘한다. 그래서 영악한 행동이 나오고 공감한다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연기한 것이다. 나의 위선을 대면하고 많이 괴로웠다.
나의 위선에 처절하게 울었다. 그리고 부정한 여인과 성난 사람들을 바라보던 예수님의 눈은 어떤 눈이었을까를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분의 성품이 내 인격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아무리 지나치는 사람들을 야리꼬리 한 눈으로 쳐다보고 또 봐도 이 마음에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가슴으로 보려 해도 되지 않았다. 도대체 예수님의 눈은 어떤 눈이었을까. 지속적으로 궁금했다.
부드러운 자아의 접속
답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멀리 있지 않다.
멀리 보려 하지 않고 가까운 주변 사람부터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들, 남편, 형제, 친구.
그들의 말, 행동을 보며 그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표현되는 언행의 이면의 그 자아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를 야금야금 맛보기 시작했다. 나의 욕심, 나의 자아가 가득 차 대치하면 절대 알 수 없는 그들의 마음.
'아~ 네가 그런 아픔이 있었구나!'
'아~ 맞아. 그때 엄청 힘들고 슬펐겠구나!'
'아~그 시절 힘들게 사셨군요!'
.....
내 아픔, 내 힘듦을 말하기보다 마음을 접속하다 보니 그들 이야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맺혀 흘렀다. 단순히 힘들고 슬펐겠구나가 아니다. 그 감정 너머 그들 삶의 배경이 그려지고 이해되었다.
가장 원망했던 사람에 대한 연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니 내 마음에 恨이 녹아 사라지고 할 것도 없이 용서가 되었다.
다시 연민
'연민을 갖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진정한 연민이란 사람은 나면서부터 낯선 세상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는 존재,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세상에서 불안을 껴안고 긴긴 현생의 시간을 걸어야 하는 불쌍한 존재임을 아는 것. 그들의 아픔이 내 마음을 울리고 애끓듯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마음이다.
연민은 나에 대한 연민으로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자신도 연민의 대상임을 알 때 동정은 사라지고 사랑으로 나아간다. 자신에 대한 연민의 눈은 처절한 아픔 속에 묻혀있던 자아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는 독백한다.
'소망, 많이 힘들었지? 엄마가 많이 그리웠구나! 사느라 애썼다. '
그러고는 밤이고 낮이고 이불 뒤집어쓰고 꺼이꺼이 울었다. 날 연민하게 되었다.
고통체가 서서히 사라짐을 느꼈다.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연민의 마음이 생기면 그 마음이 타자에게로 향하게 된다.
연민은 모든 사람의 가련함과 나약함을 아는 데에서 비롯되며 그로부터 연민하게 되는 것이다.
알아야 한다. 연민하는 인간조차 가련한 존재임을... 그러나 인간인 나도 자아에 굴복해 자주 잊으려 한다. 단지 기억하며 계속 나아갈 뿐이다. ^^